2017년에 쓴 '출판기획자의 일기' 중에서
* 이 글은 [2017. 12. 03]에 <출판기획자의 일기>라는 제목으로 홀로 썼던 글을 보완한 것입니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나의 정체성을 ‘기획자’로 확정지었다.
직무 중심의 구분이라 할지라도 저것만큼 나를 잘 대변하는 말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관리자냐 조언자냐라는 물음에도 결국에는 ‘기획자’라는 답변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나의 정체성을 그나마 완전하게 담고 있는 말은 기획자라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제부터 나는
‘출판 기획자로서 어떻게 하면 탁월해질 수 있을 것인가’
‘출판 기획자로서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출판 기획자로서 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새로운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먼저, 내가 생각하는 기획의 정의를 정리해보겠다.
나의 기획에 대한 생각은 츠타야의 기획자이자 기획사인 CCC의 대표, 마스다 무네아키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인턴 때부터 내가 기획에 대해 고민했던 지점을 가장 명쾌하게 풀어준 기획자는 아직 그 사람뿐이다. 그 사람은 출판기획자는 아니지만, ‘기획’이라는 좀 더 앞선 개념에 대해서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고, 가장 큰 확신을 안겨준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획은,
첫째 소통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관점이 없었다. 기획을 잘한다는 건 ‘기획자’로부터 출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뿐, 그 이후에 누구에게 그 기획물이 전달되며, 그들이 그 기획물을 잘 전달받기 위해서 기획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따라서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사고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기획은 철저히 ‘소통’되어야 한다. 그 말인즉슨, 항상 고객을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 뻔하지만, 사실상 출판기획자가 특히나 출판사에서 일하는 기획자들이 늘 놓치는 부분이다. 제목을 만들 때도 대표가 통과시킬 만한 제목을 뽑아갈 때도 많고, 카피 하나를 쓸 때도 그냥 나 자신의 관점에서 쓸 때가 많다. 이것이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이 책에 손을 대고 만지고 넘기고 그것을 정말 받아들이게 만들려면 어떤 형태여야 하고 어떤 식으로 편집이 되어야 하며 어떤 재질이어야 하는지, 사실상 ‘기획자(혹은 편집자)가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정말 그 부분에 대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철저히 검증해나가면서까지 만들기는 쉽지 않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래서 기획은 고객 가치를 반드시 반영해야 하며, 고객에게 전달되는 그 이상을 뛰어넘어야 한다. 고객에게 전달된다, 즉 고객이 그것을 산다, 거기까지만 이어지는 기획은 ‘돈’과 ‘매출’, ‘숫자’에 연연하는 기획이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책을 접한(꼭 돈을 주고 사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염두에 둬야만 한다. 책이 의미가 있는 건 사실상 팔리는 것 이상으로, 그 책을 그 사람이 ‘읽느냐’에 달려 있고, ‘읽고 나서 어떤 것을 얻었느냐’로 결정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그것을 읽고, 읽은 후에 어떤 행동을 촉발시키느냐, 즉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느냐까지 보아야 한다. 사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내가 만들고자 하는 책의 장르적 성격이 크게 한몫한다.
나는 이제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주 종목은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나는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를 크로스오버할 줄은 알지만, ‘에세이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그 말은 기반이 완전한 논픽션에 있다는 것이고, 논픽션 중에서도 실용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책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용적이고 실질적인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 장르의 성격상 내가 해야 하는 기획은 반드시 독자로 하여금 어떤 변화를 촉진시켜야 한다. 그 변화는 실제로 행동까지 이어져서, 그것으로 인해 세상의 변화에 손톱만한 에너지라도 더할 수 있어야 하며, 그럴 때 그 기획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획은 탄생할 때부터,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나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로부터 변화를 끌어낼 것인가. 이 변화는 아주 자연스럽게 끌어져야 한다. 책을 읽고, 아 이렇게 하면 내 인생에 어떤 희망이 생기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기획은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는 숙명을 안고 있다.
둘째, 하나의 기획은 하나의 길을 보여줘야 한다.
기획한 책은 ‘이런 기획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길이 되어야 한다. 즉, 새로움을 무조건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류가 되는 것은 – 이건 사실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 절대로 지양해야 하고, 디자인부터 구성까지 기획의 새로운 길을 보여줄 수 있는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업계가 발전하고, 기획자도 발전하며, 그렇게 우리는 서로 상생할 수 있다. 내용의 새로움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내용의 새로움이라는 건 이제 거의 있을 수가 없다. 어차피 책은 태생적으로 그 시대에 통용되는 어떤 생각을 담을 수밖에 없으므로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수반으로 한다. 하지만 그 형태와 설계, 프로세스에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기획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후배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서로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결과적으로 그게 세상에 기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기획은 결국 하나하나가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다른 것과 연결될 가능성, 즉 확장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 기획은 다른 기획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많을수록 좋다. 이는 수평적으로는 카테고리 기획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하고, 다면적으로 여러 가지 채널이나 비즈니스와 연결될수록 좋다. 그래야 부가가치가 올라가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열려 있어야 한다.
내가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는 브랜드는 ‘과정에서의 혁신’을 담고 있다. 그 과정이 기존의 다른 출판 기획물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게 만들어야 한다.
반면 세 번째 카테고리로 생각하고 있는 ‘마이 웨이 시리즈’는 과정에서의 혁신뿐 아니라 형태로서의 혁신, 유통에서의 혁신, 다른 비즈니스와의 연결 지점을 최대한 고려한 기획이다. 리스크가 크고, 나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영역이기에 이를 세 번째로 미뤄둔 것이다. 여기까지 가려면 첫 번째 카테고리가 반드시 성공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떻게 하면 출판기획자로 탁월해질 것인가는
'기획에 대한 나의 정의'에서 출발할 수 있다.
정리하면,
고객가치를 철저하게 지킬 수 있는 기획을 할 줄 알아야 하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기획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다른 것과 연결될 수 있는 열린 기획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시킬 줄 알아야 한다.
첫째, 고객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객들과 가까이해야 하고
현장 공부가 필수적이다. 지금으로썬 이 부분이 상당히 부족하다.
이는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어서 학습하는 방법도 있다.
둘째, 하나의 길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프로세스의 혁신이 필요하다.
팀 빌딩을 해서 ‘프로젝트성 과제’를 완수해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타임 테이블이 명확해야 하고, 데드라인을 엄수해야 하며,
속도가 가장 좋은 퀄리티를 낼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빨라야 한다.
여기에는 혁신에 대한 능력도 필요하지만, 관리자로서의 능력도 필요하다.
나에겐 가장 큰 도전이 될 것이다.
셋째, 열린 기획을 하기 위해서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훨씬 더 길러야 하고, 그것들이 몸에 배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국 내가 생각하는 열린 기획은 다른 세계의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접촉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미팅’과 ‘회의’에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손해 볼 짓을 하지 않는 그런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출판 전반에 대한 이해도도 높여야 한다. 이는 신생 출판사와 일을 하면서 더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획자는 결국 총괄 책임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판 프로세스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로써,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다.
+덧
2020년 12월 10일
이 글을 다시 보니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낯선 부분도 있다.
그때만 해도 팀빌딩을 하여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챌린지였기 때문에
이런 고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창업을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획의 정의에 대해서 묻는다면 이때와는 또 다른 답을 쓰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