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민아 Jun 30. 2020

솔직히 부끄러웠다 자기계발서를 만든다는 것이

어느 10년 차 프리랜서 출판 편집자의 고백


무슨 일 하세요?


사회에 나가면 누구나 수없이 듣게 되는 질문. 이때부터 허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출판 편집자예요."

(무슨 직업인지 잘 모르는 것 같으면) 

"책 만드는 일해요."

“오, 멋지네요. 주로 어떤 책을 만드세요?”


이때부터 두 번째 허들이 시작된다. 직업을 말할 때와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한다. 자기계발서를 만든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특히 상대가 자기계발서는 인생에 하등 쓸모없다고 생각할 만한 사람 같으면 정말 난감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책'을 만든다고 할 때 ‘문학, 에세이, 인문 분야 책’을 기대한다는 것을 수차례 느껴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직업 덕에) 주변에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부터 이미 자기계발서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 자기계발서를 만드는 출판인, 자기계발서를 쓰고자 하는 사람이 널렸지만, 예전에는 어떤 모임을 가거나 사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 자기계발서를 기획하고 만든다는 것을 속 시원히 터놓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겠다.

아직도 내 안에는 자격지심이 있다. 

자기계발서를 만든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게 하는. 


왜 그럴까? 사실 나도 출판사에 취직하기 전에는 자기계발서를 한없이 폄하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지금도 ‘자기계발서는 쓰레기’라는 말을 종종 듣고, 업계에서도 이 분야의 책은 뭔가 떨어지는 듯한 책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출판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성에 대한 거대 담론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도 내가 만들어왔던 대중적인 자기계발서를 예시로 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마케팅발로 팔리는 책’ '베스트셀러가 꼭 양서는 아니다'와 같은 맥락에서 탈탈 털리는 쪽에 가까웠다. 내 자격지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출판업계에도 분야별 위계가 있어서 자기계발서는 피라미드의 바닥을 차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아왔다. 심지어 웹툰을 보다가도 자기계발서를 잘강잘강 씹는 캐릭터를 만나게 되고, 댓글로 내려가면 역시나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자기계발서를 만드는 일을 10년째 하게 되었을까?


취업준비생 시절 한 출판사 공고를 보자마자 ‘내가 그렇게 책을 좋아하고, 자료를 취합해서 정리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왜 출판사 취업은 생각하지 못했을까?’란 생각으로 그때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취업 카페에서 이런 글들을 보게 되었다.


내 자식이 취업하겠다고 하면 무조건 말릴 업종 Top4 . . . 출판
노동 환경 최악, 박봉, 작가들 뒤치다꺼리만 하다 끝, 발 들이는 순간 지옥을 경험하게 됨.
절대 오지 마라.
임금 떼이는 건 다반사, 어떤 회사인지 반드시 알아보고 입사해
작가라는 작자들, 실체를 알면... 하... 노코멘트


그런데 이런 엄청난 ‘만류의 향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취업 전선에서는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나이이기도 했고 대학원을 자퇴할 때 다시는 타인의 의견이나 시선 따위 상관하지 말고 정말 내가 잘하고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굳게 결심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유토피아가 어딨나, 그냥 다 닥쳐서 하다 보면 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정말 좋아할 수 있는 일을 해야 끝까지 버티지 않을까, 100세까지 산다는데!’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그리고 현직 편집자가 쓴 책과 강의를 들으면서 편집자가 단순히 빨간펜을 들고 교정교열을 보는 사람이 아니며 출판 프로세스 전체를 총괄하는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데 큰 흥미를 느꼈다. 


게다가 출판사 입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다. 전국에 출판사는 차고 넘침에도 출판 구직 사이트에 늘 올라오는 질문이 있다. 


“도대체 신입을 뽑는 출판사는 어디입니까?”

“다들 신입으로 시작하셨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취업을 하셨나요?”


출판계는 경력자 채용이 거의 다다. 그렇기에 나에게도 선택권은 거의 없었다. 우선은 출판사 어디든 들어가서 경력을 쌓고 그다음에 내가 원하는 출판사를 들어가는 루트만이 편집자가 될 수 있는 길로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간 첫 출판사가 주로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와 같은 실용서를 만드는 곳이었다. 만약, 문학을 만드는 출판사에 입사했다면 문학 편집자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첫 출발을 그렇게 했기에 다음 출판사 역시 비슷한 분야의 책을 만드는 곳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출판사는 종합출판사였음에도 자기계발‧경제경영팀‘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게 나의 커리어는 자연스럽게 ‘자기계발서 편집자’로 굳혀졌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게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와 만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에 생각 이상으로 큰 재미를 느낀 것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독자로서는 자기계발서를 싫어했지만,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좋아한다는 건가? 그게 가능한가? 


처음엔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드는 것과 읽는 것은 별개다, 즉 개발자의 입장과 사용자의 입장은  별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 그리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왔는지를 돌아보니, 사실 나는 전형적인 ‘자기계발(서) 덕후’처럼 살아왔던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내가 좋아했던 소설마저 자기계발적 성격이 굉장히 강했다. 예를 들어 <데미안>, <연금술사>가 그렇다. 이것을 자기계발서라고 말하는 데 분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책들을 볼 때도 자아정체성과 성장, 자립에 대한 실마리를 얻는 자기계발서로서 접근을 했고, 소위 '퀘스트 내러티브'를 가진 스토리를 선호해왔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을 좋아했다고 생각했던 나는 대중서, 베스트셀러 중심의 독서를 더 많이 했었고, 실용적인글을 주로 접해왔으며, 대학교 때 유독 이론 수업을 좋아했던 것도 이론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프레임, 핵심 메시지를 발견해내는 데 재미를 느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기계발서를 경멸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일종의 허세였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는 인정한다. 나는 전형적인 자기계발형 인간이다. 변하고자 하는 개인의 노력과 욕망에 따라 얼마든지 오늘 하루를 바꿀 수 있고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 말이다. 자기계발서에서 늘 반복되는 메시지들은 항상 내 인생의 모토였다. 나는 개인의 성장과 자립이라는 가치를 가장 중시하며, 성공도 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은,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경력이 쌓일수록 재미, 의미는 사라지고 돈을 벌기 위한 생계형 노동자로서 책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편집자를 그만둬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다. 커리어 전환을 해야 한다면 30대 중반인 지금,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내가 쌓아온 것들과 연결된 다른 커리어로 전환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그 암흑기를 거치면서 어떻게든 버텨보니, 나의 번아웃과 슬럼프는 자격지심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있어 보이고 싶어서, 무시당하기 싫다는 이유로 내가 해온 일과 성과마저 부정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온 것들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들을 ‘개선’하면 되지, 부정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자기계발서 편집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것을 당당히 밝히고,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정리하되 그동안 느낀 이 장르의 한계와 부작용을 알리고,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하고 있는지도 공유하고 싶어졌다. 


자기계발서란 것이 ‘책 같지도 않다’고 하는 그런 유형의 책일지라도 여전히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초보 저자에겐 여전히 가장 진입하기 쉬운 분야다. 또한 자기계발서로 인해 인생에 빛을 본 독자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자기계발서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던 당연한 원칙들을 상기시켜주고, 무기력한 삶에 자극을 주고, 지금보다 더 나아가게 하고,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주고, 꿈을 위해 행동하게 하는 콘텐츠다. 분명 부작용도 있지만 그것이 일상에 활력과 자극이 될 수도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폄하하기에는 그 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지난하다.


책을 쓰고자 할 때 '어떤 분야의 책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의 글쓰기는 블랙박스처럼 남아 있다. 자기계발서 역시 다른 장르와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 있으며, 자기계발서를 쓰기로 했다면 이에 맞는 로직과 접근법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고를 써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1차 탈고를 해낼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그동안 나는 주로 첫 책을 쓰는 분들의 저서를 만들어왔다. 첫 책을 쓰는 것은 단순히 책 한 권을 써내는 작업이 아니라, 출판 시장에서의 '퍼스널 브랜딩'을 만드는 첫 스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단순히 어떤 내용으로 책을 쓸 것인가만을 생각한다면 '저자'로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앞으로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앞으로의 자기계발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것을 실현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자기계발서’라는 블랙박스를 당당하게 열어보도록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직을 찾으면 행복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