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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아 Dec 09. 2020

천직을 찾으면 행복할까?

일과의 적당한 거리감


신기하게도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 외주 편집자가 된 직후부터

책이 싫어지고 편집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한 번은 책을 다 불태워버리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이기까지 했고

서점에 가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뛰쳐나오기도 했다.


일을 아주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 중에는 

서른다섯 즈음 갑자기 큰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정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며 지내왔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들리는 타자 소리가 경쾌한 노랫말처럼 들려 울컥했을 만큼.


정말. 아주 많이. 이 일을 사랑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북에디터'라는 사이트를 들어가면

편집자들의 넋두리와 함께 이 일에 대한 엄청난 불만의 글이 올라오곤 했다.

노동 환경이나 처우에 대한 부분은 나도 동의한다.

일하면서 겪는 'X 같은 상황들', 정말 미치도록 괴로운 것도 사실이다.

편집자는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하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이다.

나는 편집자가 하는 노동의 팔 할은 감정노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안 좋은 요소를 다 상쇄시킬 만큼 사랑했다.


그래서 파주출판단지로 출퇴근하던 때에도

무조건 한 달에 한 번은 퇴근 후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 

5권의 책을 구입해 속독을 하곤 했다.

사장님께서 최소 1,000권은 읽어야

깨달음이 온다고 하신 말씀을 듣고.

(그렇게 1년에 500권을 읽기도 했다.)


책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아

밤을 새며 책을 검토했던 나였는데.


책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라니.



천직(天職)
「명사」타고난 직업이나 직분



나는 약 10년간 자기계발서를 만들어왔고 

직업 때문에라도 수없이 많은 자계서를 보았다.

책에서 '천직'에 대한 내용을 보면 이상적이기 그지없다.

천직을 찾으면 모든 게 다 풀릴 것처럼 쓰여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겪은 천직은 좀 달랐다.

가족에 가까운 느낌이다.

가족이라고 늘 좋은 게 아니지 않는가.

적당한 거리감은 필수다.


천직도 마찬가지. 

일과 나의 관계는 애증의 관계, 그 자체였던 것이다.


 



5년 차까지는 그저 좋았다. 

일을 너무 사랑해서 

온 세상에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리고 싶을 만큼.

아무리 힘들어도 일에 대한 사랑만큼은 변치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했던 일마저도

정말 숨이 막힐 만큼 싫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기한 건, 그렇게 싫은데도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생계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나의 행보를 보면 이렇게까지 싫은 일이라면

단번에 그만두고 다른 일로 갈아타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럼 도대체 왜 일을 놓지 않았을까?



내 운명을 배신하기 싫었다. 

이걸 버리면 내 전부를 잃을 것 같았다.

내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일이 나를 놔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하면서 '다시는 이런 조건으론 하지 않아야지'라고 결심하면

내가 원하는 조건으로 일이 들어왔다.

심지어 그 조건이 좀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말이다.


또 어떤 일을 받았을 때 '다시는 이런 건 절대 받지 말아야지'라고 하면

그 요소만 딱 빠진 어떤 일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일부러 더 많은 것을 바라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내 일과 크게 접점이 없어도

'난 이런 게 좋던데...'란 생각을 하면

정말 그것과 접점이 있는 일이 들어왔다.

때로는 내가 꼭 만나뵙고 싶었던 분한테 연락이 오기도 했다.


물론 저런 상황이었더라 해도

내가 거절하고 놓으면 놓을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너무 싫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치 '핏줄'과 같아서 내가 아무리 외면하고 도망가려 해도

절대 끊어지지 않는 어떤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일을 외면하고 싶어하자 일이 나를 붙잡기 시작한 것이다. 

난 천직의 힘이 그토록 강한 줄 몰랐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실제로 '나와 일의 관계'가 매우 가까우면

일이 나를 끌어당기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숨막혀 하는 나를 

한 발 한 발 다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들이 나를 찾아왔다.


아무리 욕을 하고 뿌리치려 해도

일은 마치 앞에서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딱 한 발짝만 와. 더 하지도 말고."

라고 독려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편집자로서의 나를 놓지 않았다.




어느덧 출판편집자 생활 10년 차.

그렇게 일이 나를 놓지 않은 결과,

이제 내가 직접 출판을 하겠다고 창업을 했다.


더 웃긴 건 저자와 계약을 해놓고도

"나는 출판을 하지 않기 위해 우선 출판을 하는 거야."라는 맘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만들고 싶지 않아 책을 만든다는 모순이라니.


나의 뿌리가 출판이기 때문에

이것으로 돈을 벌고 다른 사업으로 확장하겠다는 합리화로

사업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알고 있다.


난 책이 싫었던 게 아니다.

편집이 싫었던 것도 아니다.

아니, 이제 그 일이 좀 힘든 것도 사실이고 힘에 부치는 것도 사실이다.


팀을 꾸려 리더로 일하면서 

어느덧 실무에서 멀어졌고

더 이상 집중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 출판사를 하겠다고 

저자를 만난 순간 알았다.

나는 이 일을 떠날 수도 없고 떠나서도 안 되고.

무엇보다 아직도 아주 징하게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열정적인 편집자로서의 나는 그대로 있었고

그날 편집의 본질이라 생각하는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자

5년 만에 다시 큰 감동을 느꼈다.




천직을 찾으면 행복할까?



이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결코 늘 행복하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100퍼센트 사랑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천직과의 관계에서도 수많은 희로애락을 경험한다.

너무 아끼니 더 힘들고 실망하게 되고 환멸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게 천직 같다.

그리고 그다음에 내가 어떤 행보를 걷게 되든

모든 길은 결국 그 천직이란 뿌리에서 파생되는 것 같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해야만 나 자신이 바로 서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행복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천직은 강하다.






https://blog.naver.com/eches84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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