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형 인간이 프리랜서가 되면 맞닥뜨리는 문제들
프리랜서가 되면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나의 약점이나 고유한 특징을 너무 노골적으로 대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출퇴근 시간이 고정되기 때문에
평일 루틴이 잡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올빼미형 인간이든 조금 게으른 사람이든
꾸역꾸역 그 루틴에 어떻게든 맞추게 된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되면 그렇게 맞춰졌던 패턴과 리듬이 와장창 무너지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습관이란 게 아무리 무서워도
타고난 나를 거스를 만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나는 타고난 올빼미형 인간이어서
퇴사 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새벽에 일을 하고 아침에 잠을 자는 패턴으로 고착화되었다.
어차피 출퇴근을 안 하는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런 패턴은 큰 문제가 된다.
왜 그럴까?
첫째, 오전 전화나 미팅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내게 일을 준 회사는 아침부터 업무가 시작되니까.
나 역시 어차피 프리랜서고 출퇴근 할 필요도 없는데
이게 뭐가 문제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회사는 보통 오전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나는 '외주자'였으므로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과 일을 해야 했다.
그들은 나에게 오전 9시에 전화를 하거나 메일을 보내기도 하며
오전 10시에 미팅을 하자고 하기도 했다.
새벽 내내 일을 한 나로써는 정말 고역이었다.
외주 편집자들끼리 만나면 농담으로
"월요일 오전 헬 타임"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특히 월요일 오전에 전화가 빗발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월요일 오전이 분주하지 않나.
나는 회사와 일하니 그들과 일하는 나 역시 같이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되면 '월요병'과 완전히 멀어질 것 같았지만
이렇게 간접적으로 월요일 특유의 분주함을 같이 느끼기도 한다.
둘째, 게으른 사람으로 보일까 봐 아침부터 깨어 있는 척을 하기도 한다.
사실 새벽까지 일을 했으면
아침에 자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여전히 아침까지 잠을 잔다고 하면
게으르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심지어 올빼미형으로 더 많은 시간을 일해도
아침형 인간이 아닌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신뢰를 잃는 느낌이다.
뭐 그렇게 피곤하게 사나.
그냥 오전에는
시간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을 받는 입장에서는 쉽지 않다.
특히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는
외주자라는 자격지심 플러스
(늘 그렇듯이) 을이라는 위치 때문에
내가 먼저 무언가를 제안을 하거나 거절하는 게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일대일 미팅이면 모를까,
나까지 세 명 이상만 되어도
시간을 다 맞추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미팅이 아침 일찍 잡히면 맞출 수밖에 없다.
또 괜히 내가 아침에 늦잠자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에도 당연히 가능한 척한 경우도 있었다.
굳이 상대에게 "제가 새벽에 일을 해서요"라고
TMI를 할 이유도 없으니까.
프리랜서가 된 후 오후 2시 미팅이 많아진 이후
하지만 프리랜서로 지낸 지 2년, 3년이 지나자
어느새 내 스케줄과 일정을 좀 더 우선시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프리랜서의 첫 번째 장벽이자 무기는
'평판'이다. 초반에는 내 평판이 깎일까 봐
어느 정도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다.
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지 않아도 될 만큼의 지위를 가졌거나
이미 회사에서 업계 사람이라면 다 알 만한 성과를 거둬
실질적으로는 갑에 가까운 입장이라면 말이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보니 프리랜서 초기에는
일정뿐 아니라 미팅 장소 역시 대부분 나에게 일을 제공해준
회사 사람들에게 맞추게 된다.
이때 프리랜서에겐 미팅 장소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다.
회사를 다니면 어차피 고정 수입(월급)이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교통비를 썼다고 해서
시간을 좀 더 썼다고 해서 그 달의 수입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시간노동자다.
즉, 내가 일에 투입한 시간만큼 돈을 벌지 못하면 마이너스다.
그런데 이동을 하는 것 또한 나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문제다.
그까짓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왜 이 이동 문제가
민감한지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나는 지금 김포에 살고 있는데
강남에서 미팅을 하면 하루가 다 날아간다.
하지만 미팅을 한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니다.
이러다 보니 그 하루 동안 내가 집에 있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즉, 기회비용을 따지면 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프리랜서 3년 차쯤 되면
'나 중심'으로 생각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최대한 선제안을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출퇴근길의 복잡함이 싫어서 퇴사한 것도 있는데
남들 다 출근할 때 굳이 나가야 하는 것도 억울하다.
원래 30분이면 가는 곳인데 출근 시간이 걸려 2시간 넘게
주차장 같은 도로를 견딜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 시간을 피하다 보면
미팅 시간으로 가장 적당한 시간이 오후 2시경이다.
우선 올빼미형 인간인 내가 정신적으로 아주 멀쩡한 오후이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만나는 시간이니 티타임만 가져도 되고
미팅은 보통 2시간 정도 걸리므로
끝나면 퇴근 시간이 오기 전에 집에 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아침형 인간이 되기로 한 이유
(참고로 이 글도 새벽에 쓰고 있다)
어느덧 프리랜서 5년 차.
태생이 올빼미형 인간임에도
나는 다시 '준아침형 인간'으로 변했다.
아니, 변해야만 했다.
결국 '건강 문제' 때문이다.
아침에 잠을 자야 하는데 못 자면 결국 신체리듬이 다 깨진다.
위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못 잘 가능성이 높다.
밤과 새벽의 고요함이 좋아(모두가 자는 시간이니 누군가가 나에게 전화,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업무 효율 급상승!)
올빼미형을 고집했지만
아침 햇살의 힘, 아침이 주는 특유의 상쾌함을 사랑한다.
어쨌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자는 것이 자연의 순리 아니겠는가.
최근엔 늦어도 새벽 2시경에는 잠이 들기 때문에
크게 부담스러운 시간은 아니다.
물론 위의 이야기들은 나의 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므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건 아니다.
만약 본인의 업계 자체가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면
올빼미형의 패턴이 허용될 수도 있고
오히려 그 패턴이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로 함께 일하는 회사는 여전히 '9 to 6' 시스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의 패턴 또한 직장인의 패턴에
어느 정도 맞춰질 수밖에 없다.
한 줄 결론:
프리랜서라고 해서
결코 프리한 건 아니다
https://blog.naver.com/eches84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을 수정하고 보완하여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