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가 내 퇴근을 방해할 때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했던가.
내 대학시절을 떠올리면 야구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야구 말고도 쉴 새없이 도파민이 쏟아지는 20대 초반이어서기도 했고, 롯데 자이언츠가 또 다시 비밀번호를 찍던 암흑기여서기도 했다. (과연 이게 야구를 안 본 제 잘 못일까요?)
이제 야구에서 한 발짝 멀어지나 싶던 2017년, 이대호가 롯데에 돌아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대호라는 이름 세글자만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심지어 롯데를 우승시키기 위해 왔단다.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 말했으면 올해도 또 속아본다,했을텐데 이대호의 입에서 나오니 마치 정말 롯데가 우승을 할 것 같고... 이대호가 우승 반지를 낄 것 같고 막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이대호가 돌아오자마자 롯데는 가을 야구를 갔다.
그 해, 딱 한 번.
그리고 가을 야구 맛에 취해있던 나는 이듬해 3월이 되자 마자 SPOTV에 들어갔다. 물론, 올해야 말로 우승 적기라는 기대를 가슴 한 구석에 고이 품고서. 스포티비는 스포츠 채널답게 각종 스포츠를 섭렵해야 했는데, 그 중에서도 당연히 야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야구가 시작하기 전에 그 날의 경기 포인트를 찾는 것도 내 일 중 하나였다. 오늘 경기의 선발 매치업이나 키플레이어를 찾는 건 쉬웠다. 시즌 초, 먼 나라에서 막 건너 온 KBO 기록이 전무한 외인 선수들은 조금 까다로웠지만. 그래도 시즌 초에는 할 말이 많았다. 이 선수가 지난 시즌에 어땠는지, 올해는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도 좋을 시기니까. 이제 시즌 초가 지나가면 그때부터가 문제이다. 벌써 몇 번의 맞대결이 지났는데, 저 방송사와 이 방송사가 하지 않은 포인트를 캐치해야했다. 그러면 이제 전날부터 퇴근 시간이 넘어서까지 야구 세부 지표를 뒤지기 시작하는 거다. 지난 몇 년간 상대 전적은 어떤지, 구장 전적은 어떤지, 득타율은 어떤지...... 어, 이 선수가 수요일에는 유독 강했네? 그럼 이제 그를 그순간부터 수요일의 사나이로 명명한다. 이 구단은 우취 다음 날엔 무조건 진단다, 그러니까 우취의 저주. 물론 실컷 찾았더니 하나 두개가 삐끗해 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야구 시작 전엔 키 포인트를 찾고, 야구가 시작되면 경기가 끝난 후 진행될 스포츠 뉴스의 대본을 썼다. 매일 밤 10시에, 뉴스 형식으로 스포츠 소식을 전해주는 코너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야구 경기가 끝난 후에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바꿔말하자면 야구 경기가 끝나지 않으면 영원히 시작하지 못한다는 뜻이 됐다. 10시가 넘어가면 모든 제작진들은 야구 경기가 나오는 모니터를 째려보기 시작한다. 퇴근을 못하게 만드는 주범은 대부분 우리 팀이었다.
"작가님 롯데 경기 좀 그만하라고 해주세요. 저희 작년에는 다음 날에 퇴근했어요."
내가 롯데팬인 걸 아는 피디님들은 종종 경기를 끝내달라는 농담을 했다. 농담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도 때로는 지금 당장 사직으로 가는 KTX를 끊어서 그라운드 안으로 난입해서라도 경기를 끝내고 싶었다. 가뜩이나 연장을 안 가도 경기 오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팀인데 그 와중에 가끔 연장도 갔다. 그리고 연장을 가서 졌다! 그러면 이제 속으로 욕을 하며 코너 프롬을 잡았다.
2018년, 이 해의 롯데 야구를 생각하면 참 끈질겼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라면 가을야구가 시작하고도 남았을 10월에도 롯데는 마지막 남은 '와일드 카드' 한 자리를 두고 기아와 접전을 벌였다. 결국 가을야구는 가지 못했고, 그냥 가을에도 야구하는 구단이 됐다. 이 해는 한화 이글스가 몇 년만에 가을 야구를 간 해기도 했다. 나는 씁쓸하게 한화 이글스의 가을야구를 축하하는 특집 영상 자막을 썼다.
내년은, 내년은 기필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롯데 자이언츠는 이후 8년동안 가을야구를 못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