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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Aug 16. 2023

13년 묵은 이력서를 꺼내보았다.


J는 생각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발견해 주는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상대방의 장점을 잘 찾아서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J덕분에 난 10년 넘게 알지 못했던 상호보완적인 존재, 무언가를 함께 할 때 높은 시너지를 발생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가 내게 영감을 받았듯 나도 그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이런 그가 어느 날 이런 말을 내게 해주었다.


매니저 님은 좋은 환경에서라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분이세요.



J의 말을 듣는 순간,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안하기도 하고, 왠지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왜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한 후 3년 차가 되었을 때 결혼을 하고 첫째를 낳아 1년 간 육아휴직을 했다. 복직 후 2년 뒤에 둘째를 낳고 또 1년 간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왔다. 그동안 회사의 규모는 커졌고 인원이 늘어남에 따라 사무실을 넓혀서 두 번이나 이사를 했다. 하지만 디자이너 인원은 변함없이 1명이었고, 나는 여전히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정신없이 일을 쳐내느라 급급했다. 두 번의 육아휴직을 하고도 복직할 수 있었다는 감사한 마음과 공백기를 메우며 정신없이 일을 하느라 이직이나 커리어 관리에 대한 생각은 먼지 한 톨도 하지 못했다. 일과 육아가 몸에 익어 좀 수월해지고 나니 이직 생각을 접게 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더 나은 환경의 직장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이직을 포기했다. 더 좋은 환경을 찾아갈 생각보다 이 안에서 성장을 하겠다는 선택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재택 근무를 하며 업무 환경에 변화가 생기고, 직장 동료들의 연이은 퇴사소식을 접하면서 이 선택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내가 사는 세상만 변한 것이 아니라 나도 변해버린 것이다.


내게 일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 뿐 나를 성장시키는 도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딱 그만큼만 일을 했었다. 그러다 J와 함께 1인 디자이너, 1인 마케터로서의 고충을 나누고, 더 나은 결과를 위한 회의와 기획, 피드백을 통해 우리의 성과를 인정받으니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마중물을 부어준 J가 떠난다니, 그리고 또 다른 좋은 직원들이 떠나간다니... 더 이상 이곳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이직을 포기했다가 이직을 다시 품었으니 그다음은 '이력서'다. 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 1년 간 다닌 웹에이전시에 지원할 때 썼던 이력서를 꺼내보았다. 13년 묵은 이력서였다. 13년 간 봉인됐던 이력서에는 고등학교 졸업 때 찍은 사진이 올려져 있었고, 자기소개서는 '저는 자상한 부모님 슬하에 1남 1녀 중 장녀로서...' 란 손발이 오그라드는 한물 간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부끄러움에 온몸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제일 먼저 사진과 기본 인적사항을 바꾼 뒤, 부끄러운 자기소개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 이력서를 업데이트할 수가 없었다. 분명 10년 넘게 일을 했는데, 육아휴직 기간을 제외하고도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어떤 일을 했는지 적을 수가 없었다. 시간에 쫓기고 능력부족을 한탄하면서도 모르는 것은 독학으로 배워가며 치열하게 일을 했건만...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력 사항이 없었다.




사진: UnsplashKevin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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