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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Jan 23. 2024

12년 전 오늘은 내가 엄마로 태어난 날이다.

오늘은 큰 아이의 생일 :-)


큰 아이 생일상 ©드로우 나미


12년 전 오늘은 음력 1월 1일 설날이었다. 평소 같으면 시댁 식구들과 함께 아침으로 떡국을 먹고 부모님께 세배드리고 산소에 갈 채비를 했을 테다.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시외가에 들러 시외할머니께 세배드리고 오후 늦게 친정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은 아침 일찍 어머님께 전화를 드리고 있었고, 나는 침대 위에서 잔뜩 부른 배를 감싸듯 옆으로 누워 진통을 견디고 있었다. 전날 밤을 진통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점점 잦아지는 진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헛구역질이 나서 싱크대를 부여잡고 웩웩거렸다. 한바탕 토악질이 끝나고 기운이 빠진 나는 힘 없이 남편을 향해 말했다.


"자기야... 이제 나... 병원.. 병원 가야 될 것 같아."


낮 12시 20분쯤 병원에 도착, 환복을 하고 가족분만실에 누워 태동 검사를 했다. 그사이 남편은 양가 부모님께 아이를 낳으러 왔다고 전화를 드렸다. 우리 부모님은 합천에 내려가는 길에 전화를 받으시곤 걱정이 많으셨단다. 운전하는 아빠는 안절부절못하시고 옆에서 사고 날까 걱정하는 엄마도 신경이 많이 쓰이셨을 거다. 전날 검진 때만 해도 나올 기미가 없다고 한 아이가 갑자기 하루 만에 나와버리니 당황스러우셨겠지. 당사자인 나도 너무 당황스러웠으니 말이다. 역시 아이는 나오고 싶을 때 나온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어떻게 예정일에 딱! 하고 나올 수가 있는지.


진통을 집에서 다~ 하고 가서 그런지, 진행 속도가 매우 빨랐다. 병원 도착하고 2시간 30분여 만에 아이는 태어났다. 몸무게 3.44kg, 키 48cm의 건강한 남자아이가, 우리 소중한 1호가 태어났다. 그날 오후부터 하얀 눈이 내리더니 그새 소복이 쌓였다. 거리가 하얗게 변한 모습을 병실 창 너머로 보며 아이가 없을 시절의 나와 남편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니 그런 감상도 찰나였지, 식사도 제대로 할 힘이 없어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잠이나 실컷 자고 싶다 생각했다. 아이가 보고 싶단 생각은 없었다. 남편이 보고 싶다 해서 같이 내려가 주었을 뿐이다. 철이 없어 보일 테지만, 모성은 서서히 키워지는 것이란 걸 겪어 본 사람은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12년 전 오늘, 엄마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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