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무조건 소비해야하는 200만원이란 돈까지 주어진다면?
아무리 걸어도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 두렵고, 현상유지만으로도 에너지가 든다고 잘하고 있다고 애써 다독여도, 좋아하는 맥주를 마셔봐도 영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서 짜증만 쌓여간다. 누가 가라고 떠민 것도 아닌데 내가 한 선택이 나를 좁은 곳에 가둬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답답함이 가득해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기도 하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되니까 애써 누르고 있다. 이러다 터지기도 하는데 꼭 만만한 애들한테 터진다. (엄마가 좀 더 어른답게 행동할게..! 수련이 더 필요햇!!)
기분으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아마추어같은 태도인 것 같고, 매번 우울한 이야기만 늘어놓는게 무슨 재미일까 싶어서 글을 쓰지 않은 날이 길어졌다. 그런데 뭐 나는 아마추어니까 상관없지 않은가? 전업 작가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또 이렇게 내 기분에 따라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려고 글을 끄적인다. 현실은 너무 시궁창 같이 어두우니까 '만약'이라는 설정을 넣어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보기로 했다. 언젠가 이 상상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을테니까.
오전 7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겨우 몸을 일으켰다. 간밤에 잡념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쳤더니 피곤해서 컨디션이 영 좋지 않다. 그런데 큰 아이는 또 아침부터 눈치없이 음식 투정을 한다. 빵이 없다고 빵 먹고 싶은데 밥 줬다고 투덜투덜... 나도 모르게 확! 짜증을 내버렸다. 큰 애는 또 금새 풀이 죽어 사과를 해온다. 너의 잘못은 없는데.. 그냥 엄마가 피곤해서 짜증에 짜증으로 대응한 것인데.. 나도 아이에게 미안함을 말했다.
오전 8시 10분, 학교 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쌓인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으로 가다가 이내 걸음을 돌려 안방 침대로 몸을 던졌다. 한숨 자야지 안되겠다. 잠을 자야 이 기분도 나아질 것 같으니 한 두시간만 자야겠다. 알람을 맞춰둬야지 하고 핸드폰을 손에 쥔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띵동- 띵동-
"음...."
지이이이잉- (핸드폰 진동 소리)
"으으으음... 뭐지..?"
뭐가 온건가 싶어서 핸드폰을 확인하니 우체국에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 앞으로 택배가 도착했고 문 앞에 두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뭔가 시킨 기억이 없는데, 발신자를 보니 어머님이나 울 엄마도 아닌데.. 의문을 가지며 현관에 놓인 택배를 집어 들었다.
크기는 작았고 무게도 가벼웠다. 서둘러 상자를 열어보니 금색 봉투와 초대장을 연상케 하는 카드가 있었다. 먼저 카드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축하합니다!
[나만을 위한 일주일 이용권] 이벤트에 당첨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크레딧 카드(180만원 정액)와 현금 20만원을 드립니다. 일주일 동안은 당신이 하고 있었던 일을 모두 대신하거나 정지하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육아, 집안일, 사이드 프로젝트 모두 내려놓고 당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오길 바랍니다.
단, 지원금 200만원은 모두 당신을 위해서만 사용하셔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거나 불법적인 곳에 사용할 시 이벤트는 바로 종료되고 지급한 크레딧도 회수됩니다. 그리고 이벤트 당첨 사실은 모두에게 비~밀 입니다. 이 사항도 어길 시 이벤트는 바로 종료되고 크레딧도 회수됩니다. 꼭 주의해 주세요.
그럼 부디 편안하고 행복하게 당신을 돌보는 일주일을 보내길 바랍니다.
당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미래에서 보냄.
"이게.. 뭐지?? 진짜 돈이 들었잖아??"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봤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다. 뭐지?? 누가 장난친건가? 이거 막 잘못쓰면 경찰이 잡아가고 그런거 아닌가? 신종 보이스 피싱 이런건가?? 미래에서 보냈다고..?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당최.. 알 수가 없네.."
매우 수상하지만 매우 달콤한 유혹이다. 일주일 동안 아무 걱정없이 나만 생각할 수 있다니.. 그것도 200만원이란 지원금까지 있다니! 벌써부터 신이 난다.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200만원의 돈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하니 두 가지 정도가 떠오른다. 석달 전부터 위시리스트에 담아둔 와콤 타블렛과 편안한 호캉스.
좋아, 먼저 타블렛 주문부터! 와콤 타블렛 구매 비용으로 약 40만원의 지출을 했다. 오늘 배송이라니까 내일 도착한단다. 내일 오후 언제쯤 오려나? 떠날 때 타블렛을 들고 떠나고 싶은데.... 아니다, 없어도 되려나? 그래 그냥 종이에 연필로 그리지 뭐. 이게 더 감성적이니까?! 후후- 택배는 안전하게 집으로 잘 올테니 이제 호캉스를 어디서 즐길지 생각해 봐야겠다. 서울로 갈까, 속초에서 호캉스를 할까? 서울에 있을 때는 서울의 호텔에 가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속초에서 호텔을 가도 무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친구들도 만나고 싶지만 만나면 왠지 나의 이 횡재수를 말하고 싶어질 것 같다.
노트북 가방에 노트북과 충전기, 드로잉 노트 한 권과 필통, 다이어리, 사두고 읽지 못한 책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을 챙겨 넣는다. 핑크색 캐리어를 열어 편하게 입을 옷 한 벌과 예쁜 여름 원피스 한 벌, 상의 한 벌, 여름 샌들 한 켤레를 담았다. 남은 공간에는 노트북 가방을 넣어야지. 이어서 작은 크로스 백을 꺼내 지갑, 티슈, 화장품 파우치, 핸드폰과 에어팟을 담아 마친다. 애슐리 조식이 먹고 싶었으니까 애슐리 퀸즈가 있는 켄싱턴 설악비치로 가야겠다. 5박 6일 머무르는 일정으로 보니 110만원 정도 지출이 발생한다. 현재까지 150만원 지출! 나에게는 아직 현금 20만원과 크레딧 카드의 잔액 30만원이 남았다. 이제 요거는 혼자 시간 보내면서 먹고 싶은 것 실컷 먹으면서 보내야지. 여행 온 사람처럼 그렇게 지내야지. 야외 테라스에서 생맥주도 한 잔 마시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 마시면서 그림도 그리다가 할일 없이 뒹굴뒹굴 침대에서 뒹굴대다가 잠이 오면 자다가 날이 좋으면 산책도 하면서 그렇게 푹 쉬어야지.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상상.
이제 현실로 돌아와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시간.
괜찮아, 기분이 나아졌으니까.
그리고 정말 이뤄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내가 상상하고 계획한 것이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니까.
일종의 버킷리스트의 구체화라고 보는 것이 좋겠다.
판타지로 빠지는 이야기를 쓰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그것은 추후에 풀어내보기로.
미래에서 택배를 보낸 사람은 본인이었다는 너무 뻔한 설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즐거웠던 상상쓰기였다.
가끔은 이런 글쓰기도 좋네.
사진: Unsplash의Johannes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