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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Jul 15. 2021

세대차이를 인정하는 커뮤니케이션

우리 모두 낀 세대가 된다.




2019년 봄, 회사에는 나와 띠동갑인 직원이 입사를 했다. 그분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는 첫 아이를 낳고서 '아줌마'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리고 첫 아이의 어린이집 상담에서 '어머님~'이란 말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과 같았다. 그 순간 사장님의 한 마디가 나의 귀에 쿡하고 박혔다.


이야~ 남희 씨 이제 서울 사무실 여직원 중에서는 왕고네?


왕고... 왕고라.... 그러니까, 내가 벌써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뻔한 말이지만 세월 참 쏜살같이 빠르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년 차 신입으로 입사하여 회사의 막내로 일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나와 12살 차이 나는 띠동갑 직원이 들어왔다니?! 서른다섯이 아니라 마흔다섯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저마다 소개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러 자리에 돌아와 앉았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충격의 여운은 업무시간이 끝나고 퇴근길 내내 이어졌다. 멍한 상태로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엄마의 퇴근을 반기며 다리와 옆구리에 매달리는 아이들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아차차- 이럴 정신없지! 어서 밥 차려서 먹어야지'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냉장고를 뒤적여 어제 먹고 남은 삼겹살 두 덩이를 꺼내 구울 준비를 하고 있자니 작은 아이가 옆에 다가와 말을 붙인다.


엄마, 내가 어제 사촌 형이랑 탁주 TV 봤는데, 탁주랑 쪼꼬가 로블록스에서 ~~~ 했는데, 그래서 이게 ~~~ 해서 ~~~ 하는 거야. 엄청 웃기지?!
어 그래그래 웃기네.


사실은 뭐가 웃기고 뭐가 어쨌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어쩐 일인지 낮에 회사에서 느낀 감정과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한다. 


'아.. 안돼! 고기에 집중하자. 고기에만 집중..!'


온 신경을 집중해 삼겹살을 노릇하게 구워낸 후 저녁상을 차려 가족이 둘러앉았다.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열심히 삼겹살과 밥을 먹는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2호야, 아까 그거 뭐랬지? 탁수? 
에이 엄마, 탁수 아니고 탁주!
그래 그거 탁주. 엄마 잘 모르는데 밥 먹고 알려줄래?
응! 좋아, 내가 알려줄게 엄마.


저녁상을 물리고서 아이들이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을 함께 보았다.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는터라 다행히 로블록스와 마인크래프트 영상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은 아니었다. 엄마가 함께 자기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웃고 떠드니 기분이 한 껏 들떠서는 서로가 자기가 보는 게 더 재밌다며 난리를 피운다. 귀여운 녀석들, 열심히 설명하고 또 설명하고 뭐 그리 하고 싶은 말이 많은지 종알종알거리며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유튜브를 보았다. 


밤 10시 30분 아이들이 잠든 후 고요한 평온이 찾아왔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를 한 캔 꺼내어 한 모금 마시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과 감정을 돌이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엄마와 함께 명동 데이트를 갔던 날이 떠올랐다. 12년 전 사회 초년생 시절에 <엄마를 위한 데이트 코스>로 명동 아이쇼핑 - 아웃백 식사 - 딸기빙수 후식을 이야기하며 엄마를 끌고 명동엘 갔던 그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 덕분에 명동에서 아이쇼핑도 실컷 하고, 아웃백도 가보고~ 딸기빙수도 생전 처음 먹어보았네~ 딸 덕분에 호강했네, 고마워~
에휴, 엄마~ 이게 뭐 별거라고. 다음에 또 같이 와요.


나도 당시에 엄마와 함께 내가 좋았던 것, 재미있었던 것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엄마를 위한 데이트>라는 핑계를 대며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엄마는 다 알면서 모른 척 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나 길게 하셨구나. 딸내미 기분 좋으라고. 이제야 당시의 엄마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되었다.


추억 여행을 마침과 동시에 마시던 맥주도 동이 났다. 잠든 아이들 얼굴 한 번씩 쓸어주고 다음 날을 위해 잠을 청한다.


아침 6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가방을 챙겨주며 학교와 유치원을 보낸 뒤에 사무실로 출근한다. 부대끼는 지하철을 견디고 커피 한 잔 사서 사무실로 들어서면 오전 업무 준비를 위해 길 샤함과 외란 쇨셔의 <Paganini for Tow>를 튼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엄마에서 직장인 모드로 전환 완료. 업무 투두 리스트를 확인하며 일을 하다 보면 어느덧 점심시간이 된다.



Photo by Brooke Cagle on Unsplash


직장 내 점심 식사는 크게 사무실 안에서 먹는 도시락파와 밖에서 먹고 오는 외식파로 나뉜다. 대게 도시락 파는 회의실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게 된다. 나는 그들의 대화 주제에 끼어들 틈이 거의 없어서 그저 웃으며 듣다가 어쩌다 얻어걸린 화제가 있으면 살짝 끼었다가 이내 듣기 모드로 돌아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하면서 지속적으로 세대차이를 느끼게 되지만 그 상황에서도 내 말에 맞장구를 치고,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주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이따금 애엄마 티를 내며 아이들 이야기를 호들갑스럽게 꺼냈다가 민망해해도 아이들이 정말 귀엽다며 격한 호응을 하는 그들이 참 고맙다. 


'아... 이런 느낌이 우리 엄마가 나에게 말한 '고맙다'라는 의미일까?'






90년대생 직원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20대 시절에 바라본 30대, 40대의 모습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내가 생각한 모습으로 30대를 살고 있는가? 내가 생각했던 모습으로 40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20대에 이해하지 못한 그들의 말과 행동을 30대가 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전부 다는 아니어도 뭐든 사정이 있었겠구나 싶다. 

여전히 막내일 줄 알았던 직장에서 더 이상 막내가 아닌 고인물이 되었다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 나도 낀 세대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고인물이 썩지 않기 위해 언제나 유연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90년대생을 대하려고 한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세대 간의 소통도 위에서 아래로 향해야 자연스럽다. 아이들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른다. 등 돌린 사람보다는 자기를 향해 눈을 마주치는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고 소통한다. 90년대생과의 소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대차이를 인정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어느 한쪽이 맞춰주는 소모적인 일이 아니라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느슨한 연대를 유지하며, 서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배움과 대화를 나누는 관계를 맺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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