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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Sep 19. 2021

이 글은 퇴사를 앞둔 내가 나를 위해 쓰는 글입니다.

다소 길고 지루할 수 있으니, 원치 않으면 뒤로 가기를 누르세요.

회사의 유일한 디자이너로 일을 한다는 것은 디자인 잡부가 돼야 한다는 말과 같다. 올라운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사소하게는 명함부터 크게는 제품 UI와 홈페이지 제작까지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디자인 업무는 다 해야 한다.


장점을 말하자면 다양한 업무를 할 수 있어서 좋고, 혼자서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툴을 쓰는데 자유롭다. 팀이 없으니까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하는 만큼 해볼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단점이라면 혼자 하기 때문에 성과 측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피드백을 받기 어려워서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알기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무작정 던져지는 일을 그대로 다 받으며 어떻게든 해내지만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 수밖에 없다. 이 서투름이 능숙함이 되기도 전에 새로운 미션을 받으니 도대체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나의 쓸모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연인관계에서 문제를 방치하고 쌓아두면 곪아서 터지듯 회사와 직원 사이에서의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쌓아두면 터지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곪아있던 문제가 빵-하고 터진 계기는 모두가 혼란스러운 '코로나 팬데믹' 그리고 개인적으로 충격받은 '1n연차 멤버의 퇴사'였다.


갑작스러운 코로나 팬데믹으로 강제 재택근무를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회사 밖에서 회사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정말로 외딴섬에 혼자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대로 내가 사라져도 회사는 괜찮을 것 같았다. 맡은 일을 탈없이 잘 해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내가 없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맴돌았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의 퇴사는 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



나 여기 계속 다닐 수 있나? 내가 여기 계속 다녀야 하나?




연인 사이가 외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여도 내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은 결혼을 생각 중인데, 다른 한 사람은 결혼보다는 다른 일이 더 중요한 경우다. 표면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여도 서로 다른 방향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계로 남기가 어렵다. 헤어짐의 상처는 있겠지만 결국 각자 원하는 방향을 가기 위해 헤어져야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나와 회사의 관계도 이런 삐걱거림이 존재했었다. 내가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잠시 덮어두었을 뿐.


퇴사를 앞둔 지금 온갖 잡념이 휘몰아쳐서 힘든 이 상황에서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간 살기 위해 대충 덮어버린 나의 불만을 꺼내서 정리하고 싶어서다. 끝을 내더라도 그동안 내가 어떻게 버티고 살았는지 기록해두고 싶어서다. 잘 지내왔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입사 후 회사 제품 로고를 시작으로 애플리케이션 UI 디자인, 대시보드 디자인, 포털 디자인 등 새로 접하는 일을 막무가내로 하다 보니 가장 어려운 점은 디자인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웹 에이전시를 다닐 때처럼 선임이나 다른 디자이너 동료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서 외로웠다.


사장님, 저는 웹디자이너로 입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최근에 하고 있는 업무들은 제 역량을 넘어선 일들이 많아요. 알음알음 배워서 하고는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면 정말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함께 디자인 업무 고민을 나눌 사람이 필요합니다.


미안해 남희 씨, 사장인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 하지만 우리처럼 작은 회사는 각자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남희 씨가 잘 해내고 있잖아. 앞으로 사정이 나아지면 사람을 더 뽑을 수 있을 것이니 조금만 더 부탁해.


순진한 나는 이 말을 믿었다. 회사 제품이 많이 팔리고 돈을 많이 벌면 나도 팀원이 생기고 디자인 업무의 고민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이 생각이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입사 후 3년 차 되었을 무렵 회사는 역삼동에서 도곡동으로 이사를 갔다. 인원이 늘어나고 장비가 늘어나 더 큰 사무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임원 포함하여 대여섯 명이 한 공간에서 복작이던 사무실을 벗어나 넓은 곳으로 이사를 오니 매우 기뻤다. 임원들은 각자 방으로 들어갔고, 회의실과 탕비실이 생겼다. 제법 그럴듯한 회사의 모양새를 갖추게 되면서 조직도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획/관리 지원 - 디자인, 경영지원


조직 개편 메일을 받은 후 다음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장님 면담을 신청했다.


사장님, 저는 디자인과 경영지원이 한 그룹으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장님은 제가 어떤 업무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이번 조직 개편은 매우 불편합니다.


남희 씨, 조직도는 그냥 형식적인 것일 뿐이야. 그런 형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돼, 여태 하던 일이 변경되는 일 없고 앞으로 그저 남희 씨가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되는 거야. 변하는 것은 없어.


아무리 소속이 중요하지 않다고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다. 이로써 그동안 내가 힘들다고 고민을 털어놓은 그 순간에 들었던 말은 그저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가망이 없구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계속 혼자 일을 하던가, 아니면 다른 곳으로 떠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나의 몫이었다.


나의 선택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일하는 것'이었다. 결혼과 임신이라는 요인이 컸지만 그래도 내가 그리 결정한 일이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것이다. 이직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첫 번째 육아 휴직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신입 디자이너가 왔다. 계약직이 아닌 정직원 채용이었기에 어쩌면 디자인 팀으로 일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버렸던 기대를 다시 품고 1년 3개월의 공백기를 거쳐 복직을 했지만 나는 다시 혼자였다. 1년을 채운 디자이너는 사내 연애 후 결혼으로 퇴사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상황이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심도 되었다. 디자인 고민을 나눌 동료가 생겼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긴 공백기를 채우는 과정에서 계속 일을 한 디자이너와 비교되거나 트러블이 발생할까 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고 이기적이다.


복직 후 6개월 간 신입의 마음으로 일을 했다. 다시 나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게 내가 회사의 배려에 답하는 예의라고 생각했다. 인수인계 파일과 업무 폴더를 살피며 흐름을 파악하고 뒤쳐진 디자인 감각을 찾기 위해 책을 보고 세미나와 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 1년이 더 지나고 업무가 다시 익숙해질 시기에 둘째를 갖게 되었다. 두 번째 육아 휴직을 신청하고 인수인계할 디자이너를 기다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사장님은 디자이너 채용을 하지 않으셨다. 대신 포토샵을 할 줄 안다는 개발자와 영업 이사를 팔로 업할 마케터를 채용하셨다.


내 업무를 누군가 나눠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회사가 바라보는 디자인 영역의 중요도를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신입 개발자를 만났는데 그분은 포토샵을 할 줄은 알지만 디자인 작업을 해본 경험이 없기에 내 일을 백업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함께 채용한 마케터에게는 회사 홈페이지 관리를 위한 워드프레스 사용법을 알려드렸다.


디자이너 공백을 비 디자이너인 두 신입이 채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나의 우려와는 달리 회사는 다시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개발팀과 운영팀 인원이 더 늘었고, 디자인 업무는 5개월 계약직을 통해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직 후 프리랜서 디자이너에게 인수인계를 받은 다음 날부터 나는 일 폭풍에 휩싸여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두 번째 복직 시기는 2016년으로 아이폰 출시 이후 웹 생태계가 데스크톱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옮겨가는 상태였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웹 표준, 그리드 레이아웃 등 급변한 생태계의 흐름을 알기 위해 책을 사서 보고, 강의를 듣고, 세미나에 참석을 하는 등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총동원해서 주어진 일을 악착같이 해냈다. 돌이켜보면 정말 힘든 순간들이지만 이 시간이 있어서 내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내가 행동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성향이 빛을 발했던 시간이었다.


이런 나의 노력과 경험은 글로벌 진출 초반에 매우 좋은 결실을 맺었다.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캐치하고 더 나은 디자인을 제안하며 글로벌 CEO에게 호평을 받았다. 마케터와 원활한 소통을 통해 혼자보다 둘이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협력할 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경험도 했다. 일은 힘들어도 즐겁고 재밌었다. 결과물이 대한 반응이 좋고 발전하는 내 모습이 눈에 보여서 더 신이 났다. 우리 제품이 대박 나서 전 직원이 실리콘밸리에 가보자는 사장님의 말에 동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회사의 비전이 보이고 살아 움직이는 듯해서 설렜다.


그러나 현실은 차가웠다. 글로벌 사업 진행을 위해 현장에 다녀온 직원들과 국내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온도 차이가 심했던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회사가 벌여놓은 사업의 개수가 너무 많아서였다. 직원들 월급을 주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한다는 '국책사업'과 'SI' 그리고 자체 솔루션과 글로벌 진출까지 실무자들이 하고 있는 업무량이 너무 많았다.


압축 성장, 몰입, 다시 뛰는 10년.


사장님이 회사 10주년 워크숍 때 한 말이다. 10주년에 다시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린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황에서 겨우 하루하루 버티는 상황에서 다시 스타트업처럼 일을 해야 한다니.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회사는 여전히 스타트업이고 여전히 국책사업을 버릴 수 없는 상황이다. 나도 여전히 혼자 일을 한다. 회사를 탓하기 전에 나는 어떠한가? 내 실력은 10년 차 디자이너의 모습을 갖추었는가? 아니라면 이는 무엇이 문제인 걸까? 이 고민에 대한 실마리는 남편과의 대화에서 얻을 수 있었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회사와 내 현실에 열불이 나서 퇴근 후 바로 맥주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방에서 나온 남편 맥주를 꺼내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안주로 꺼내 놓은 오징어 다리를 질겅거리며 하소연을 늘어놨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큰 무리 없이 10년을 넘게 회사를 다니는 것이 참 신기하고 용하단 말이지.


맥주를 마시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도 내가 잘해서 그런 거 아닐까? 뭘 잘한 건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회사가 원하는 업무를 소화했으니까 가능한 거 아니었을까?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생각을 좀 바꿔보면 이 상황은 자기 회사에 큰 문제일 수도 있어. 10년 동안 한 명의 사람이 디자인을 한다? 트렌드에 예민해야 하는 디자인을 한 사람의 스타일로만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회사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수도 있거든.


아... 팩폭 오지게 맞았다.


나만 고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있는 회사 자체가 고인물이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조직 안에서 내가 더 성장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10년 차의 실력이 없는 것이 순전히 나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이를 너무 늦게 알아챈 책임은 나에게 있지만 말이다. 적어도 더 이상 이 조직에서 내가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인물이 썩지 않으려고 혼자 발버둥을 쳐봤자 이곳을 나가지 않으면 나는 변할 수 없다. 회사에는 고인물들끼리의 연대가 강해 새로운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어서 흐름이 계속 끊기고 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며 어느 곳에도 낄 수 없는 나는 결국 겉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깨달았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까, 여전히 나는 회사에서나 쓸모 있는 사람인데. 회사가 원하는 대로 굴려진 톱니바퀴에 불과할 뿐인데...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 없이 뛰쳐나가자니 아무것도 아닌 무능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이직을 하자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는 것은 물론이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 했다. 10년도 더 전에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고 있자니 한숨부터 나왔다. 그동안 뭘 많이 했는데 포트폴리오로 내세울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동안 커리어 관리를 소홀히 한 대가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넋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든 해봐야겠단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다. 


이직을 위해, 커리어가 되는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운명처럼 만난 <한달어스>의 자기 발견을 시작으로 1년 간의 꾸준한 참여를 통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서른일곱 해를 살면서 지난 1년만큼 치열하고 밀도 있게 살아본 적이 없었다. 회사 일이 힘들어도 한달어스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고단함 씻어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나도 모르고 있던 나만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었다.


나의 특별한 재능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행동하는 것, 그 행동을 지속하는 것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더란 말이다. 게다가 호기심이 많으니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뭐든 하면 다 잘하는 사람, 결심하면 바로 실천하는 실천가! 그게 바로 나다.



잘했다, 장하다! 앞으로는 더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라!



비록 <잡 디자이너의 N잡 프로젝트>는 긴급 퇴사를 함으로써 무산이 되었지만, 이 글을 시작으로 퇴사 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퇴사와 함께 서울을 떠나 속초로 이사를 가니까 <퇴사 후 속초 살이 프로젝트>로 이름을 어볼까나?


이사 갈 집 보러 가는 길에 들른 외옹치 해수욕장



잠깐, 그전에 처리할 일이 산더미다. 지금은 퇴사를 잘하는 것과 이사를 무사히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글 다음에 또 언제 브런치에 글을 쓸지 모르겠다는 변명이다.


변명이지만 글쓰기가 어려운 나름의 이유로 To do List를 작성해본다.


내일 휴식 인증 잊지 않기, 물건 정리하기

추석 전날, 시가 식구들과 산소에 다녀오기

추석 당일, 친정에 가서 인사드리기

추석 다음 날, 이삿짐 정리하기

목요일, 금요일 출근해서 진행 업무 마무리 하기

<한달어스> 글쓰기 유치원, 미라클 모닝 & 감사일기 완주 하기

<한달어스> 서포터즈, 응원 요정 활동 열심히!

9월 27일, 큰 아이 담임 선생님께 전학 사실 알리기

9월 30일 마지막 출근일까지 인수인계 문서 정리 완료하기

10월 1일 ~ 7일까지 연차 소진 후 10월 8일 서류상 완전 퇴직.

이사 전까지 버릴 물건 다 정리하기

10월 15일 강원도 속초로 이사.


큰 아이 전학 수속, 작은 아이 유치원 알아보기

이사 후 속초댁으로서의 삶을 연재. (글이든 그림이든 뭐든-)

MKYU 강의 챙겨 듣기 (심리학, 메타버스, 이모티콘)

네이버 스티커 '땡꼬의 일상' 2탄 제작 진행

카카오 이모티콘 재심사 신청

17기 <한달어스> 브런치 글쓰기 프로그램 참여 예정

<한달어스> 서포터즈, 응원 요정 활동 열심히!



오늘 글쓰기에 쓴 시간은 총 4시간이다. 궁둥이가 다 아프다. 이제 그만 자야지.

일 안 하니까 너무 좋은데? 막상 또 일이 없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휴직과 퇴직은 다르니까.




- 길고 긴 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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