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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미 Aug 15. 2021

사랑이란, 시시콜콜 공유하고 싶은 것

귀여운 내 남자의 시시콜콜 생중계 에피소드 세 가지

올해는 우리 부부 결혼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선물 같이 우리를 찾아온 큰 아이 덕분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다닥 결혼을 했지만, 싸워도 24시간을 넘기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며 큰 싸움 없이, 싸워도 슬기롭게 화해하며 행복하게 지내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10주년을 자축하는 의미로 '귀여운 내 남자의 시시콜콜 생중계 에피소드 세 가지'를 써보려고 한다.



에피소드 1


연애 시절 우리는 회사가 가까워 매일 만나면서도 통화도 수시로 오래 하곤 했다. 데이트 후 나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길에도 통화를 계속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내가 연락을 먼저 하지 않아도 기다릴 틈도 주지 않으며 수시로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자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자는 처음이라 마음에 쏙 들면서도 낯설었다. 그래서 그가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그날은 각자 사정이 있어 만나지 못했던 날이었다.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가 나는 그에게 집에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침대에 누워 안락함과 포근함을 느끼던 순간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상기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있잖아, 지금 나보다 걸음이 엄청 빠른 사람을 발견했어!"

뜬금없는 중계방송이 의아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응? 무슨 소리야~?"

그는 계속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걸음이 제법 빠르잖아, 자기도 알지? 그런데 내 옆을 슉 하고 지나가는 남자가 있더라고! 그래서 깜짝 놀랐지 뭐야?"

나 원참, 이 무슨 소소한 상황보고란 말인가.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아아 그랬어? 그래서?"

그는 기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응 그래서 내가 막 더 빨리 걸어가서 그 사람을 방금 이겼어! 잘했지?!"

나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응응 잘했네~!!"


아.. 진짜.. 좀 뜬금없긴 한데... 귀엽다 이 남자.. ㅋㅋㅋ~



에피소드 2


결혼 후 남편은 회식이 있는 날이면 회식 출발 시간과 장소를 나에게 알려주곤 한다. 그리고 장소를 옮기면 그때마다 누구와 어디에 간다는 내용을 내게 전화로 알려주었다. 그래서 보통 회식을 가도 걱정을 잘 안 하는 편인데 그날은 집으로 출발하였고 30분 뒤면 도착한다는 사람이 1시간이 지나도 집에 도착하질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난 후 나는 걱정이 되어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 자기 어디야? 왜 이렇게 안 와? "

" 나... 낙성대야 ㅜㅜ "

" 응? 왜 거깄어?!! "

" 자다가 눈 뜨니까 역삼이었어 ㅜㅠ "

" ;;;;;;;;;;;; 언넝와 ㅜㅠ 또 졸지 말고!! " 


40분 뒤... 그래도 오지 않는 남편... 뭔가 불안해서 다시 전화를 했다.


" 자기 어딘데? "

" 자기야!! 나 좀 집에 보내줘어~~~~ "

" 응? "

" 나 지금 합정이다? 첨엔 어디였는지 알아?"

" 어디였는데? 또 잤구나!! "

" ㅋㅋㅋㅋㅋ 을지로 3가~~ 나 신경질 나 ^^^^ "

" 왜 또 거기까지 갔어~~  집 놔두고 자꾸 밖에서 자고 그래~~ "

" 몰라 몰라 ㅜㅜ 다시 홍대 방면으로 탔는데 합정이야 "

" 이그... 얼른 와아... "

" 알았어~~~ " 


잠시 후 다시 울리는 전화 


" 여보세요? "

" 자기야!! 보고싶어어어~~!! "

" 웅? 왜 그래 왜 그래~ "

" 이제 홍대입구 나왔는데 마을버스가 끊겨서 걸어가~ 집이 왜 이렇게 멀지? ㅠㅠ 너무 멀다 ㅠㅠ " 


아 정말.. 웃으면 안 되는데... 너무 웃긴다. ㅋㅋㅋㅋㅋㅋㅋ~ 

결국, 남편은 2시간 동안 밖을 헤매다가 집으로 왔다. 그러게.. 술은 적당히 마셔야지요~

오래간만에 생중계 들으니 연애할 때 떠오르고 좋긴 좋네 그려~




에피소드 3


코로나 이후 바깥 활동이 줄어들어 좀이 쑤시는 두 아들을 위해 남편은 오래간만에 자전거를 태워주겠다고 나섰다. 신나서 따라나선 작은 아이와는 달리 덥고 땀나는 것이 질색인 큰 아이는 집에 있는 쪽을 택했고, 결국 남편은 작은 아이와 함께 자신은 따릉이를 타고 자전거 타기에 나섰다. 


30분쯤 지났을까? 남편한테서 전화가 왔다.


"응, 왜애?"

"자기야, 있지! OO가 안 보여!"
"응?? 무슨 말이야???!!"

"아니, 한강 쪽으로 길 따라서 같이 가는 길이었는데 OO가 앞서서 달리더니 안 보일 정도로 혼자 멀리 가버렸어!"

"엥?? 어떻게 해? 잃어버린 거야???"

"에이 뭘 잃어버려~ 외길이라 괜찮아. 길 따라 쭉 가고 있겠지."
"아...(한숨) 난 또 잃어버린 줄... 두 발 자전거 탄지 좀 됐다고 혼자 쭉쭉 가는구먼-"

"응, 엄청 잘 타네 ㅎㅎ~ 너무 더워서 10분만 더 타다가 집에 가야겠어"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타다가 와~"

"응 알았어~ 끊어~"


.... 아들내미 자전거 타고 엄청 빠른 속도로 갔다고, 매우 잘 탄다고 현장 중계를 해주고 싶었나 보다.

진짜.... 아들 잃어버린 줄 알고 놀랬는데...-_-;;; 정말 못 말린다.


아.. 내가 잠시 잊고 있었구나. 우리 남편 원래 이런 남자였단 것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 아이를 낳고, 만 10년을 넘게 함께 살면서 연애할 때의 설렘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것이 행복한 이유는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해줄 만큼 애정이 넘쳐서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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