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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Aug 23. 2015

엄마도 글을 씁니다


“아들, 소설은 어떻게 쓰는 건가?”


엄마는 언젠가 물었다. 그런 걸 엄마가 묻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 


“엄마가 알아서 뭐하게?” 내가 대답하고,

“그런가? 죽기 전에 소설을 한 번 멋있게 써 보려고.” 엄마가 다시 말다.


엄마는 내가 대학생 때 중학생이 되었다.   

엄마처럼 중고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성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입학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선 초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엄마는 자신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기 저기 서류를 떼러 다녔다.   .  ...

     ,       .   


엄마는 아침마다 정말 중학생처럼 책가방을 메고 등교했다. 어린 중학생들과 함께.

가끔 오전 수업을 지각하고 느지막이 학교에 갈 때

식탁 위에 도시락이 놓여 있곤 했다.

엄마가 놓고 간, 엄마의 도시락이었다. 중학생 엄마의 도시락.

이걸 가져다줘 말아, 고민했었지.


수업을 마치면 나는 늘 학교에 남아 시를 썼다.

어두워지면 인문관 앞을 걸어서 스쿨버스를 타러 갔는데, 가끔은 혼자 거기 앉아 한참을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삶에 대한 질문이었고, 동시에 시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둠이 가득하다는 거, 삶과 시의 공통점이었다.


그때 그 시간, 엄마는 집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처럼 엄마도 매일 막막함과 싸웠다.

작은 상을 펴 놓고, 눅눅한 김처럼 구겨진 채, 엄마는 공부를 했다.


‘아들, 언제와? 중학교에 괜히 갔나. 하나도 모르겠어.’


문자메시지가 오면 나는 다시 일어나서 걸음을 옮겼다. 엄마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쁜 꽃들의 모임이 왜 집합이 안 되는 거야?”

“엄마, 기준이 모호하잖아. 꽃이 다 예뻐?”

“꽃은 다 예쁘지. 꽃이 안 예뻐?”

“예쁘지. 그래도… 그건 집합이 아니래.”

“왜?”


엄마는 집합을 유난히 이해 못했다.

나도 집합을 유난히 못 가르쳤다.


엄마는 대학에 갔고 졸업까지 했다. 나는 시인이 됐다.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엄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엄마는 많은 것을 걸고, 진지하고 아프게 글을 쓴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거야.
숨을 쉰다고 사는 게 아니야.”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엄마는 ‘존재를 증명’하는 게 무엇인지,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쓰고 싶은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흐릿해지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1일에 ‘이우성 작가를 읽다’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브런치 팀에서 준비한 행사였다.

이우성은 나다.

행사가 열리기 2주 전에 담당자가 찾아왔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말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고 했다.

담당자는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고, 무척 진지하게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분들을 만나고 싶졌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고, 무척 진지하게 글을 쓰는 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엄마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다. 어쭙잖은 말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그날 나는 오히려 배웠다. 괜한 겸손 같은 게 아니다. 그분들은 정말 진지했다. 그건 굉장한 힘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좋은 글이 될까, 늘 고민한다. 위대한 작가들도 매일 이런 고민을 했을 것이다. 만약 답이 정해져 있다면, 누구나 위대한 작가가 됐겠지.

답은 없다. 글은 고유한 것이고, 자기 자신의 것이며, 은밀다.


진지하게 자기 자신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굉장한 재능을 갖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진지하다면 당신이 옳고,

진지하다면, 이미 어떤 글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그날 이 말을 못해줬다. 그때는 나도 몰랐으니까.


지금 엄마의 꿈은 동화를 쓰는 것이다. 아들에게 아이가 생기면 그 동화를 소리 내어 읽어 주는 것이다.

아들은 나다.

엄마는 내 문우文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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