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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05. 2015

역사교과서, 청계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국가에서 교과서를 ‘국정’ 따위로 만들려고 한다.

‘국정’이 무조건 나쁜가? 어쩌면 좋은 역사책을 만들 수도 있다. 집필하면서 인터넷에 올려 다양한 의견을 듣겠다는 방침까지 발표했다. 창의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역사 기술’이라는 게 인터넷에 올려  평가받을 사안인가?

‘다양한 검증’을 위한 거라면, 애당초 역사 교과서를 ‘국정’ 따위로 안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이따위 글을 쓰고 싶지 않지만 답답해서 쓴다.

이 땅에서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어서, 조금의 의무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


‘친일 교과서’ ‘졸속교과서’ ‘나쁜교과서’가 문제의 본질일까?

만약 냉정하고 공정한 교과서를 만들면 어떡할 건데?

기적처럼,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면 어떡할 건데?


문제의 핵심은

엄청나게 좋은 교과서를 만든다고 해도, 이 문제 자체가 정당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날씨 좋은 날 저녁, 청계천에 가면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청계천은 잘 가꾸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겉만이 아니라 내부를 들여다봐도… 혹시 좋은 도시 계획의 일부일 수도 있잖아?


하지만 결과가 좋다고 해서, 정확하게는 좋게 보인다고 해서,

우리가 청계천을, 정확하게는 청계천을 뜯어 버린 이 모시기 대통령인지 시장 따위를, 그 양반이 한 이 개발 사업을, 지지할 수는 없다.


왜?


청계천의 역사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겨우 시장이나 대통령이 역사를 도려낼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신기하다. 만화 같아.

그게 너네들 거니?


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멋진 건물이다. 자하 하디드는 설명이 필요 없는 건축가고, 아마 그 자신, 본인이 설계한 건물을 보고 흐뭇해할 거라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그녀가 흐뭇해하는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가?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한국 담당자들이 그들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그 거대한 건물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건물은 누가 봐도 멋지다. 그렇게 거대한 유선형 건물이 세계에 많지 않다.

하지만 외국 사람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보다 창덕궁, 종묘, 경복궁을 더 신기해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다 데리고 다녀봤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보고 한 외국인 친구는 말했다. “굉장히 판타스틱한 건물인데, 이 건물은 마치 우주에서  쿵하고 떨어진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우주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원래 진짜 후지고 멋진 게 있었는데, 때려 부수고, 근처에 있는 것까지 다 때려 부수고 저 따위 걸 만들었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가면 즐겁게 뛰어오는 학생들을 볼 수 있고, 신기해하며 쳐다보는 노인들도 볼 수 있다. 나도 그게 참 멋지다고는 생각한다. 그런데… 어릴 때 아빠는 “우성아, 차범근이라는 축구 선수가 말이야, 동대문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경기 끝나기 5분 남겨 놓고, 3골을 넣었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동대문운동장, 가보고 싶다. 그거 어디 있지? 그걸 꼭 때려 부셨어야 했어?

왜 대한민국에서 개발은 뭔가를 깡그리 지워버려야 가능한가? 역사는, 복원할 수가 없는 건데.  


역사 교과서, 욕 나온다.

부디 좋은 교과서 만들어라. 이젠 이 말 밖에 할 수 없다. 힘이 없다.

세월호 사건이 흐지부지 잊히는 걸 가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좋은 교과서를 만들려면, 존재했던 모든 교과서를 폐기하고, 완전히 새로운 단 하나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

왜 이따위 나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숙고하는 대신,

깡그리 무너뜨리고 새로 짓는 방식을 택하는가?

목적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모두 불 질러 버릴 권한을 누가 그들에 부여했는가?


전 세계에서 몇 남지 않은 공산 국가만이 국정교과서를 사용한다고 한다.  

“영원히 하자는 게 아니라, 잠깐 하고, 언제든 검인정 교과서로 돌아가면 됩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근대화 이후 대한민국은 힘을 가진 권력자가 독선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왔다.

우리는 이 역사를 잊으면 안 된다.


그들이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지우려는 역사는 무엇일까?


어쩌면 좋은 교과서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청계천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보기에 따라선 성공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뭐?

왜 우리가 잃은 것은 떠올리지 않는가?

왜 우리가 잃을 미래의 것들은 떠올리지 않는가?


우리가 졌다. 이따위 나라, 정치하는 놈들에게 졌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 많은 패배가 우리 앞에 있다.

이길 수가 없다.


내가 글을 이따위로 쓰는 것도 다, 역사 교육을 잘 못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이제 와서 그게 다행이라니...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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