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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Mar 26. 2016

시인 김민정

아프다

<좋아서 하는 인터뷰_한겨레 esc>


이 연재를 시작할 때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사실 나는 이혼했다. 힘들었다. 어떤 사람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분명하게 알았다. 그 사람이 마음 깊이 나를 걱정하고 위로하고 믿고 있다는 것. 이 연재의 제목은 ‘좋아서 하는 인터뷰’다. 그 사람을 인터뷰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민정. 사진 송곳 작가 제공


“우성아아.” 그 사람은 나를 이렇게 부른다. “우성아”가 아니라 “우성아아”다. “아아”에 담겨 있는 마음을 적을 길이 없다. 그 사람은 늘 나를 걱정한다. “아아”에는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느껴진다.

시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무지 괴로웠다. 나는 지방대를 나왔다. 우리 학교에선 나 말고 등단한 사람이 없었다. 그때 내가 부러워했던 학교는 고려대, 명지대, 동국대, 서울예대였다. 거기 출신 작가들이 많으니까. 나는 어디를 가도 그들 사이에 낯선 애처럼 앉아 있어야 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밑도 끝도 없다. “그냥 마음이 허할까봐. 괜찮은가, 걱정이 되고 그러네.” 그 사람이 말해주었다.


그 사람은 유명한 시인이다. 이름은 김민정이다. 나는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에 당연히 그녀의 시집을 읽었다.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를 읽었을 때 해방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렇게 써도 되는구나.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는데 김민정이 시로 말해주었다. 되바라지고, 속되고, 정직하고, 세다. 은유는 비유가 아니었다. 그녀의 시에서 은유는 그 자체로 사실이었다. 나는 이 언어의 독특한 순환에 매료되었다. 그런 그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우성아아아.” 며칠 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가 하나쯤 더 길었다. “잘 있었어? 누나가 아팠어. 병원에 있었어.” 눈물이 났다. 화도 났다. 욕도 나왔다. “누나, 그럴 거면 일을 그만둬!” 역정 내듯 말했다. 그녀가 뭐라고 대답할지 빤히 알았다. “그래도 어떡하니. 이번에 좀 쉬려고 해봤는데,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몸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그녀는 살려고 일한다. 그런데 그녀가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의 책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녀는 출판사 편집자다. 유명하고 큰 출판사에서 일한다.

예전에 서효인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민정 누나가 은재에 대한 책을 쓰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그래서 쓰게 됐어.” 은재는 서효인의 딸이다. 조금, 아주 조금 아픈 딸이다. 그렇게 해서 <잘 왔어, 우리 딸>이 출간됐다. 은재는, 아마 살면서 엄청난 난관에 부딪칠 거다. 조금 아픈 아이는 이 땅에서 그렇게 살게 된다. 십년 후, 이십년 후를 생각한다. 은재는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용기를 낼 거다. 분명히. 편집자 김민정이 책을 만드는 이유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것이다. 김민정은 모든 것을 잘한다. 시도 잘 쓰고 책도 잘 만든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일은 사람을 보듬는 것이다. 어떤 아픔의 순간으로 먼저 가서, 그 사람이 아프지 않도록 준비해두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가장 못하는 일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그녀는 많이 아프다.

“아프지 마, 누나” 나는 말한다

“결혼하지 않은 걸 처음 후회해봤네. 남편이 있으면 하소연도 하고, 투정도 부리고 할 텐데. 늙은 부모한테 와서 그런 거 다 받아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녀는 모른다. 그녀 옆에 많은 사람이 있다. 그녀는 전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아프면 당장 달려와줄 거다. 내가 아니라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프면 당연히 달려갈 거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전화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그녀는 건강해지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녀 자신을 위해서겠지만, 더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편하게 전화하기 위해서겠지.

“퇴원했어. 많이 좋아졌는데, 계속 조심해야지. 완벽하게 낫는 게 아니니까.” 이상해. 드라마에서도 그렇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착한 사람은 왜 아플까? 그런 사람이 왜 외로울까? 나는 그녀의 병을 떼어다가 나쁜, 내가 너무 싫어하는 사람에게 붙여주고 싶다.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시를 쓸 수 없어. 나는 더 못 쓰겠어.” 그녀는 지금까지 두 권의 시집을 냈다. 두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는 명징하고 명확한 시집이다. 이 시집이 겨냥하는 것은 간단하다. 시, 뭣도 아니다. 시, 그까짓 거. 이딴 마음이다. 그것이 그녀가 시를 숭배하는 방식이다. 나는 이미 김민정이 시를 더 쓰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뭘 더 얘기하지 않아도 김민정은 우리 문학사에 남는다. 김민정은 시라는 허울을 벗기고, 자신의 시를 발견했다.

그렇지만 너무 아픈 말이지 않은가. 시를 쓸 수 없다니, 더는 못 쓰겠다니. 이 말이 단순히 시적 재능이 소멸해버렸다는 것을 의미할 리 없다. ‘아이들’이 물속으로 가라앉은 후에 사람들이 조금씩 그 참사를 잊어갔다. ‘생일시’라는 게 있다. 생일을 맞은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시를 써주는 것이었다. 생일을 맞은 ‘아이’의 음성으로 겨우 살아가는 엄마, 아빠, 동생, 언니, 오빠, 형을 일일이 호명하는 시를 시인들이 썼다. 김민정이 그걸 했다. 시인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시를 더 못 쓰겠다는 김민정의 말을 알 것 같다. 우리에게 더 이상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러나 김민정은 늘 “살아라”, “건강해라”, “잘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프지 마, 누나”라고 나는 자주 말한다. 그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알면서.


그런 김민정을 만났다. 병원에서 퇴원한 김민정이 고기를, 무려 한우를 사주겠다고 했다. 내가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먹었다. 그녀가 언제 행복한지 알기 때문이다. “우성아아, 잘 살아라. 잘돼라. 기죽지 말고. 더 먹어. 밥 먹지 말고 고기 먹어.” 나는 그 많은 고기를 다 먹었다. 누나가 더 시켜줘서 더 먹었다. 누나가 언제 배불러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자꾸 울컥했다. 소중한 사람이 나를 떠날까봐 두렵다. 누나가 없으면, 착한 우리 누나가 더 아파서 지금보다 더 마르면, 나는 정말 혼자가 된다.

“그런데 우성아아….” 누나가 망설이며 말했다. “누나, 상 탔어. 현대시작품상. 아까 전화 받았어. 시도 못 쓰는데 상을 왜 주시나 모르겠네. 너한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거야.” 아…. 시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직하게 삶을 살며 정의롭게 세계를 지키는 것, 그것이 시인이, 작가가, 아니 어른이 할 일 아닌가. 아마 저 상은 그녀의 마음을 향해 내리는 감사의 뜻이 아닐까, 나는 자꾸만 우기도 싶은 것이다. 잘됐어, 잘됐다고.

이우성 시인


한겨레 | 입력 2016.03.17. 10:56


: 그녀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아파서 어떡해?" 라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그렇게까지 아픈 건 아니에요"라고 대답하며 민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멀쩡한 건 아니잖아, 누나."


그렇다, 지금... 이 세상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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