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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May 05. 2016

'실연' 박물관

실연당한 사람 모여!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Ⅱ에서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 실연에 관한 박물관>이 열린다.

미리 보고 왔는데… 슬프다.


이별한 사람들에게 ‘이별에 관한’ 물건을 기증받아서 전시한다. 사연도 받고.

어떤 건 웃긴데, 난 슬픈 것들에 더 눈이 갔다.


<실연박물관>은 크로아티아에서 왔다.

10년 전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사랑을 키워가던 연인,

조각가 드라젠 그루비시치와 영화 프로듀서 올링카 비스티카는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두 사람은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할 아이디어를 생각하다, 이 전시를 고안한다.


2006년,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두 사람과 지인들의 실연에 관련된 물건을 선보였다.

그 후 ‘실연에 관한 박물관’은 일반인들이 개인의 물품을 기증하고, 기증된 물품들이 사연과 함께 전시된 후 다시 영구 컬렉션으로 소장되는 콘셉트로 진행되고 있다. 자그레브의 상설전시와 더불어 전 세계 22개국 투어 전시를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전시 때마다 관객들이 엄청 몰렸다고 하는데, 그럴만한 게, 실연과 관련된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 막, 보고 싶어 지기도 하고!

아라리오 뮤지엄은 전시를 위해 2월 14일부터 한 달간, 사연과 물품을 기증받았다.

이번 전시는 그중 67점과, 과거 해외에서 기증받은 46점이 함께 전시된다.



내가 가장 슬펐던 건 이 아래 사진 속에 있는 스피커다.

미술을 전공하고 유학을 준비 중인 아들이 클래식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사온 거다.

아들은 죽었다. 아버지는 이 스피커로 클래식을 들으며 아들 생각을 한다. 그렇게 산다.

매일 근처 성당에 가서 아들을 생각하며 3번씩 종을 두드린다고 한다.

아빠… 가까스로 견디는 삶, 아빠. 아들은 소리 속에 있을까...

아들이 사준 스피커


이건 기저귀다.

자세히 보면, 전부 구멍을 뚫어 놨다.

몸이 아픈 강아지에게 입히려고. 꼬리 구멍이다.

강아지 역시… 운명을 달리했다. 아픈 강아지를 보살피며, 그런 강아지를 지켜보던 기증자의  삶이

나에게도 느껴져서, 아팠다. 큐레이터에게 기저귀에 관한 사연을 듣는데, 조금 눈물이 났다. (사실은 많이...)


아픈 강아지에게 입힌 기저귀



이건 보시다시피 차.

남편과 같이 놀러 다닐 때 타던 차. 남편이 운전하고 산이며 들이며 데려다주던 차.

이제 남편은 없고 차만 남았고, 이렇게 기증했다.

아들, 딸, 부인이 하늘 나라에 간 '아빠'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것 역시 읽어볼 수 있다.

읽으면서, 이 가족이 언제나 어디서나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에 계신 우리 아빠 생각도 났다.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나에게도 언젠가 커다란 이별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도 들어서 숙연해졌다.  

 

아빠랑 함께 타고 다녔던 차







이런 전시다.

살라고, 살아내라고, 말하는 전시.

슬픔을 딛고, 현재를 사랑하라고 말하는 전시.

이별을 간직하되, 함몰되지 말라는 전시.

나아가라고, 결국은 나아가라는 전시.


이런 전시는 처음이다.

이별을 모을 수 있다니...


아름답고, 또 아름답고, 슬프다.

9월 25일까지니까 또 봐야겠다. 슬픈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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