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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l 18. 2016

2016 7 18

갑자기 시 청탁이 많이 들어온다.

이거를 써야 하나...


시에 대한 결핍이 없다. 아니, 있는데, 힘들어서 없다고 말하고, 그러는 동안 정말 없어진 걸 수도 있다.

시는, 굳이 내가 안 써도 다른 사람들이 잘 쓴다. 시인들이 시를 무지 열심히 쓴다.

나도 그렇게 열심히 써야 하는데... 왜 그래야 하지... 문학사에 남으려고?


관심 없다, 문학사.

선생님들이 그러셨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남는, 오래 살아남는 시를 쓰라고...

시간을 이겨내는 시...


그런 시가 위대한 건 안다. 그런 시는 시대의 빛이 될 거다, 언젠가는.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시대'는 지금이다. 왜 먼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내가 시를 쓰지 않으면 누군가 서운해할까? 내 시를 그리워하는 누군가 있을까?라고 질문하면,

나는 대답을 안다. 그런 사람은 없고, 있더라도 소수일 것이며, 그들은 잠시 문득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시를 쓰는 이유를 오로지 나에게서,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왜 시를 쓰지? 학교 다닐 땐 후배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싶어서 썼다. 지금은? 모르겠다.

내가 시를 써도 사람은 죽는다. 아픈 사람은 아프다. 약한 사람의 편은 약한 사람들뿐이다.

이 시대의 불공평한 것들이 나는 너무너무 싫다. 나는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데, 시로 그것을 할 수 있을까?

시를 그것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옳은가? 아, 그것이 안 옳다고 할 순 없으니까, 그건 괜찮아. 괜찮아. 내 시는 내 거니까, 내 맘이지. 하지만 할 수 있냐고? 내가 그런 시를 쓸 수 있냐고? 시가 그런 힘이 있냐고?


나는 감각적인 시를 썼다. 나는 대한민국 누구보다 언어를 감각적으로 다룰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다 뭐야?

도대체 무엇을 위한 거였나?

나는 무력하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

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 기형도, 時作 메모(198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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