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섬이 가진 속내
태어난 지 24년 만에 제주도에 처음 발을 디뎠다. 동생은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고, 신혼여행지가 제주도였던 부모님은 자식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제주도로 휴가를 가고는 하셨다. 그동안 나는 한 번도 제주도에 가보지 못했다. 일본행 비행기는 여러 번 탔으면서 제주행 비행기는 한 번 타 보기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그나마 일로는 한 해에 몇 번 정도 다녀오긴 하지만 여전히 내 손으로 티켓을 끊기는 어렵다. 가깝지만 참 멀리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섬이자 나에게는 미지의 섬이었다.
가장 평화로웠던 시절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때가 있나’라고 물으면 내 생애 가장 빛났던 시절인 ‘제주도에 머물렀을 때’라고 하고 싶다. 그 의미인즉슨 그때는 20대 초반이었고, 지금까지 겪어온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오로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할 수 있었을 때, 몸과 마음이 가장 건강했을 때였다. 대학 졸업 직전 취업을 생각하기 시작할 시기에 처음으로 느껴 본 자유로움은 지금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제주는 일본에 있을 때와는 달리 같은 한반도 영토 내에서 언어나 통신의 제약이 없고 비교적 쉽고 저렴하게 집이나 서울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섬 안에서도, 제주에 처음 가기 전 육지에서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어디론가 멀리 이동할 수 없도록 하는 심리적 장벽이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공간적으로 낯설기만 할 뿐 몸이 자유롭고 누군가 이런 자유를 방해하는 사람이 없어 긴장은 덜 되는 상황에서 내 본능을 마음껏 펼쳐 보였던 시기였다.
왜 제주에 갔을까
제주살이는 철저히 계획에 의해 진행된 나의 인생 프로젝트였다. 대학 2학년까지 마치고 바로 일본에서 1년을 유학한 후 사회 경험을 쌓는다는 명분으로 1년을 휴학하고 부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집밥을 먹었다. 휴학을 끝내고 4학년을 채우러 서울로 돌아가기는 해야 하는데 2년 동안 떠나있던 서울은 나를 환영해줄 것 같지 않았다. 사실 내가 서울에 가고싶지 않았다. 우선 2학년까지 내 보금자리였던 학교 기숙사가 신입생들을 놔두고 4학년을 열렬히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았고, 비싼 서울 땅에서 자취 때문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던 3년 동안 침대도 주고 책상도 주고 아침저녁으로 챙겨주던 기숙사에서만 살다가 혼자서 살림을 꾸릴 자신이 없었다.
이러한 4학년 1학기 주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바로 제주대학교로 학점교류를 신청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와 학점교류 협정을 맺었던 학교 중에 수도권의 여러 다른 대학은 6학점 내에서만 수강 신청이 가능했지만, 제주대는 무려 18학점까지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무려 한 학기를 제주대에서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제주도민인 동기가 제주대로 학점교류를 하러 가서 집이 도내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생활을 했다는 아주 믿을만한 정보가 있었기 때문에, 4학년 1학기는 제주대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주거 문제 해결이 가장 큰 고민이었기 때문에 부산에 교류 대학이 있었다면 심각하게 고민했을 수도.
그리고 나에게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사설 모의고사를 보면 지망 대학을 표기하는 칸이 있었는데, 은근슬쩍 제주대를 써서 냈다. 진짜로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 왠지 아름다운 미지의 섬 제주도에 있을 것 같았는데, 거창한 대의에 눈이 멀어 내 본능을 직시하지 못했다. 이제는 진짜 제주대학생이 되어 고등학생 때부터 품고 있던 막연한 호기심을 해결해 줄 절호의 기회를 만났다. 운명의 계시인지 휴학할 때 같이 일하던 언니도 제주대 출신이었다.
나는 그렇게 제주도의 가장 비수기인 3월에 비행기 티켓이 부산행 KTX보다 싼 것에 감탄하며 제주공항에 내렸고, 넓은 학교 안을 도는 버스를 타고 언덕 맨 꼭대기 기숙사에 도착했다. 제일 오래된 기숙사의 4인실이었지만 낯선 땅에 이 한 몸 머물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다는 한라산이 기숙사 창문에서 보이는 것에 감탄하며 또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갔다.
제주대학교 학생
4학년 1학기를 맞이하면서 들어야 하는 전공, 교양과목도 웬만큼 일본에서 3학년을 보내는 동안 다 채워왔고, 본교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전공필수 과목만 남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는 대학생으로서 관심 있고 알고 싶었던 학문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전공을 벗어나 관광학, 동양 사학, 제주의 역사, 영양학 등 제주에서만 배울 수 있는 과목이나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었고, 스스로가 재미를 느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서 그런지 학점도 꽤 높게 나왔다. 그리고 대학생이면 피할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조별 과제 덕에 아무런 연고도 없던 제주도에서 또래 학생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때 만났던 다양한 친구들은 제주도를 보고 느끼고 알아가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제주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서, 지금까지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학교를 몇 군데 다녀보니 이렇게 자연, 그것도 한라산의 품속에 있는 학교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첫 등교 날 학생회관 뒤에서 빠르게 뛰어가는 노루를 보았다. 그 뒤로 한 번도 노루를 본 적은 없지만, 기숙사에서 한라산이 보였던 것만큼 강렬한 충격이었다. 국내에서 손에 꼽을 만큼 넓은 캠퍼스와 산의 지형을 살린 오르막은 그만큼 체력 증진에 도움을 주었다. 이와 함께 가장 좋았던 것은 넓은 대운동장이었다. 체력이 최상을 달릴 때라 제주의 풍경과 함께 뛰어보고 싶어 마라톤 대회까지 준비했었는데, 저녁에 대운동장에 내려가 힘껏 달리기 연습을 하고 운동장 잔디에 드러누웠을 때, 하늘에 별이 쏟아질 정도로 많이 보이는 날은 다시 일어나기가 싫을 정도였다.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에는 운동하고 주말에는 제주도 나들이를 하러 가는, 건강하고 이상적인 대학 생활을 즐겼다.
1학기의 제주대학교는 입구부터 벚꽃 터널이 펼쳐지고 그 후로 푸르른 녹이 올라오면서 한라산이 내뿜는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나는 3월에는 유채밭으로, 4월에는 오름과 청보리밭으로, 5월에는 폭포와 목장으로, 6월에는 금빛 노을과 풍차가 있는 바다로 떠났다. 괜히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다가 답답할 때면, 서일주버스를 타고 곽지해변이 보이는 카페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러고서는 협재해변으로 가서 지는 노을을 보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제주 서쪽의 대표 해변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사람이 몇 없는 텅 빈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이 여름의 해 질 녘 협재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주신 이후로 푸른빛 붉은빛 섞여 있는 일몰을 볼 수 있을까 늘 기대하지만, 이 아름다운 해변에 예전보다 쉽게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노을을 내 눈으로 보기를 기대하는 건 큰 욕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