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섬이 가진 속내
한라산
제주에 간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제주에 온 목적 중 하나이자,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욕심내볼 수 있는 ‘한라산’ 등산에 대한 기대감이 극에 달해 이제는 때가 되었다 생각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 임에도 아침 일찍 516 도로를 오르는 버스를 타고 성판악에 내렸다. 학교 후문이 516도로 입구라 서귀포로 넘어가는 버스도 쉽게 탈 수 있다. 차가 없어도 쉽게 한라산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장산 날다람쥐의 그동안 갈고닦은 등산 스킬을 시험하듯이 평균적으로 성판악코스의 정상 등반에 걸리는 시간, 4시간 반에서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는지 재보며 거의 쉬지 않고 한라산 백록담까지 올라갔다. 나무데크와 계단으로 이어진 길이 많아 정상에 오르는 건 별거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약 3시간 반 정도 걸려 구름이 짙게 깔린 탁 트인 고원지대를 통과해 백록담에 올랐는데, 천국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애 처음으로 구름을 밟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똑같은 코스로 다시 내려가는 건 역시나 재미없다는 오만한 생각에 학교와도 가까이 있는 관음사 코스로 내려갔는데, 정상 언저리에서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아 발이 푹 빠져 골로 갈 뻔한 것을 시작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지속되었다. 등산 스틱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올라가는 것은 정상 정복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어느 정도 힘든 것은 감수하고 계속 올라갈 수는 있지만, 내려가는 것은 그저 돌아가야 할 곳을 향하는 것일 뿐, 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루하기 마련이다. 그 지루함 때문에 돌계단을 뛰어 내려가 보기도 하고 앞만 보고 무작정 걸어서 3시간 반여 만에 겨우 관음사 코스 시작지점에 도달했는데, 막상 학교 기숙사로 다시 돌아가자니 돌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학교로 가는 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택시를 타기에는 넘치는 체력과 패기로 똘똘 뭉친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사치였다. 그래서 학교 바로 뒤 신비의 도로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관음사라는 것을 떠올려 기숙사까지 걸어갔다. 약 7시간의 등반을 하고 3.5km의 거리를 또 걸어서 내려갔더니 만신창이라는 느낌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대로 뻗어 이틀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가파른 길을 무리해서 뛰어 내려오다 보니 몸이 많이 놀란듯했다. 돌이켜보니 관음사코스로 정상까지 올라가던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 후로 한라산 백록담에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또 가게된다면 관음사 코스로 제대로 된 산행을 하고, 그나마 평탄한 성판악 코스로 무리하지 않고 내려오는게 한라산을 좀 더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비극이 서린 땅
제주에 관한 기억 중에서 가장 강렬했던 기억이자 꼭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이번 장을 쓰고 있다. 단 며칠의 여행으로 제주를 찾게 되면 절대 알 수 없는 제주에 서린 비극, 제주의 역사에 관한 기억이다. 단 몇 달 체류했던 경험으로 섬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제대로 헤아릴 수 없겠지만, 과거를 극복하고 섬과 육지라는 이분화된 생각들이 하나가 되는, 평화의 섬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사를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 한편에 남게 되었다.
제주에 있을 때는 도내에서 벗어나려면 바다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가야 한다는 고립감이 은연중에 느껴졌고, 도민들은 같은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도민이 아닌 사람들을 경상도든 전라도든 어디의 사람들이 아닌, 모두 육지 사람이라 불렀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에 이주하려고 할 때, 마을에 쉽게 녹아들기 어렵다고 하는 사례는 이러한 배타성에서 기인한다. 이는 육지의 중앙정부에 진상품을 조달하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수탈당한 근세시대의 역사에서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4.3사건의 비극이 일어났던 몇십 년 전 과거의 비극적인 기억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제주대에서 관광학을 수강하면서 관심 있었던 ‘다크투어리즘’을 직접 체험해보았다. 일반적인 관광은 풍경이 멋진 곳이나 문화유적지 등을 방문하면서 치유와 배움을 얻어가는데, 다크투어리즘은 전쟁, 재난 등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던 곳을 일부러 찾아가서 역사에 대한 교훈과 반성을 일깨워주는 여행이다. 제주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여행지는 4.3 평화공원과 함께 일제강점기 수탈의 잔재가 남아 있는 알뜨르 비행장과 그 일대의 지하 벙커, 동굴 진지 등이 있다. 놀랐던 것은 지하벙커와 동굴진지가 섬 곳곳에 많은 수가 산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송악산의 허리에 구멍을 내놓은 것처럼 여러 개 숭숭 뚫려있는 동굴 진지는 두 눈으로 직접 봤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땅굴이라고 하면 DMZ나 민통선 내에 일반인이 쉽게 갈 수 없는 전쟁 유적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을 뿐 제주도의 많은 오름 안에 구멍을 내 태평양 전쟁을 위한 전쟁기지로 썼다니, 4.3 유적지도 그렇고 늘 힐링이 되는 제주의 절경 속에 역사의 아픔이 사려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일제시대의 제주에 대해서 어떤 수난을 당했는지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실상은 육지의 그 어느 지역만큼이나 섬 안의 사람들과 땅까지 고통받으며 오키나와와 함께 제국주의의 본거지로 수탈당하고 있었다.
제주에서 경험한 역사의 흔적들은 앞서 2년 전 오키나와에서 겪었던 기억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일본 유학 시절 학교 세미나에서 여름 과제 활동으로 오키나와에 갔었는데, 물론 유명한 수족관이나 에메랄드빛 해변에도 갔지만 가장 먼저 첫날에 갔던 곳은 평화기념공원과 일본 자위대 기지였다. 류큐 왕국에서 일본 본토의 반식민지로 전락하여 결국은 대일본제국에 흡수될 때까지, 오키나와도 마찬가지로 중앙정부로부터 차별을 받아왔고, 태평양 전쟁 때 전초기지로서 섬의 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지금도 미군과 자위대가 주둔하고 있어 태평양으로 바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갈등이 있었던 서귀포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도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맥락이다. 풍광이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이 휴양을 위해 찾지만, 사실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제주와 오키나와는 닮았다. 이 점에서 착안하여 서로의 아픔을 공유해서 두 섬이 국경을 뛰어넘어 세계의 평화로 나아가는 화합의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제주는 세계자연유산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았음에도 물질문명의 탐욕에 의해 계속해서 자연이 파괴되고 중국의 투기와 치솟는 부동산 가격, 관광산업에 의존한 산업구조 등으로 여전히 많은 우려를 안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에서부터 비롯된 내부의 갈등이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계속해서 이분법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매년 4월 3일이 되면 열리는 기념식을 생방송으로 전 국민들이 보는 것만이 사건에 대한 환기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정작 제주에서는 세계 평화의 섬이라는 슬로건을 곳곳에 내세워 많은 활동들을 한다. 이러한 활동들이 육지인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 그중에서 나라는 존재는 정치학도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가 바로 이 시절이었다.
지금 일을 하면서 제주도는 촬영 기회가 있으면 종종 가곤 한다. 제주대생이던 시절 제주를 여러 바퀴 샅샅이 돌면서 익혔던 길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활력이 넘쳐났던 제주에서의 시절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하지만 일로 가는 제주는 촬영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 그 시절마저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못 가보았던 수많은 제주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마음 속에 두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도 내 마음대로 가 볼 수 없다는 것이 늘 아쉽다. 그렇게 좋으면 거기서 살지 하면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언젠가 다시 오랜 시간 있다 올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