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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Jun 13. 2020

5. 안동

다시 찾게 되는 옛 도시

  보호자의 역할을 했던 가족이 아닌 친구와 단 둘이서 부산이 아닌 다른 도시로 떠났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그 처음의 기억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던 겨울에 떠난 안동으로의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10년도 전의 일이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경주가 아니라 안동이었는지, 고속버스를 타고 갔는지 무궁화호를 타고 갔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도시에 대한 궁금증과 용돈이 궁한 중학생에게는 낭만보다는 현실적으로 저렴하고 빠른 고속버스를 타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왜 대구보다 멀리 있는 안동에 갔는지는 그때의 내가 정확히 알고 있겠지만, 그때부터 발길을 이끌었던 매력적인 도시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안동민속박물관 (2006, 2014)


  두 번째로 안동을 찾았을 때는 8년이나 지나 대학생이 되어 로망이었던 내일로 여행 때였다. 유학시절 친하게 지냈던 일본 친구와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단 둘이 기차를 타고 팔도유랑을 다녔는데, ‘한국 유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까지는 아니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위해서 해운대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출발해 제일 먼저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에 관한 가장 최근의 기억은 작년 크리스마스 때였다. 일에 치이고 서울살이에 진저리를 느껴 어디로든 떠나자고 사회생활하면서 사귄 친구와 단 둘이 안동으로 떠났다.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떠날 시간조차 서로 맞지 않아 우리는 그날 저녁 안동 중앙시장의 유명한 찜닭집에서 오랜만에 조우했다.


  안동은 시간이 흘러도 계속 발길을 이끄는 어떤 힘이 있는 도시다. 도시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우리가 시간이 아쉬워 눈에 담지 못했던 것을 또 보고 싶게 하는, 어찌 보면 경주와 비슷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주는 왕조의 수도로서 유적이나 유물들이 크고 화려하고, 최근 들어 사람들이 북적이게 된 거리가 활기찬 기운을 준다고 하면, 안동은 고즈넉하고 진중한 유교의 미로 다양한 볼거리 속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준다는 차이가 있다.


월영교 (2014)


나의  여행

봉정사 (2006)

  처음으로 ‘여행’을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선택한 도시. 안동으로 떠나는 교통수단을 선택하고 시간을 확인하고, 안동에서 갈 곳을 정하고, 이동 방법도 탐색한다. 그리고 중간에 먹을 곳도 정한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이라는 행위들은 이때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15년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안동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봉정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익히 알려진 하회마을이나 도산서원이 아닌 ‘봉정사’에 갔는지 모르겠다. 봉정사 극락전이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국사시간 때였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국의 사찰로서 등록되었을 때는 2018년이었다. 여행지를 탐색하는 중학생의 안목이 이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부모님께 혼날까봐 해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지만 이동수단이 버스 말고는 마땅치 않아 버스 배차시간을 잘 맞춰 타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봉정사를 거쳐 하회마을 - 월영교, 그 당시 월영교 너머에 있던 KBS 세트장, 민속박물관까지 다 둘러보고 왔던 알찬 여행이었다. 


하회마을 (2006, 2014)


 번째 안동


  안동을 두 번째로 찾은 것은 자칭 Korea Grand Tour 2014, 일본 친구와 함께 떠난 내일로 여행이었다. 대학생들이 방학에 해야 할 필수 여행인 일주일 무제한 기차여행, 나에게는 세 번째 내일로 여행으로 전국을 거의 한 바퀴 도는 코스였다.** 안동은 신해운대역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도착한 여행지로, 친구 에리코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를 보여줄 가장 완벽한 도시로 선택했다. 

하회마을 (2014)
안동민속박물관 (2014)

  안동역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첫 번째 코스로 안동 하회마을에 가서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절벽 위로 올라가 낙동강 줄기가 휘감고 가는 하회마을의 절경을 감상했다. 교과서에 나왔던 하회마을 사진의 뷰포인트. 다시 안동역으로 돌아가 반대편 월영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언덕 넘어 성벽을 지나 찾아간 오래된 기억 속 드라마 세트장이 그때는 왜 들어가서는 안 되는 한옥마을 같은 느낌이었는지 모르겠다.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던 어렸을 적보다는 폐쇄적인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마 그때가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관광지로서 마지막 운명을 다하고 있을 과도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월영교에서 나오는 길에 있는, 안동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TV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헛제삿밥을 먹었다. 한국인에게도 호불호가 갈릴 맛이라 일본 친구와는 안동에서 훨씬 유명했던 찜닭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특별한 기억을 심어주겠다는 과한 욕심이 어쩌면 나를 위한 것이지 않았나 한다. 


 사실 이때의 내일로 여행은 기차로 하는 전국일주를 빙자한 ‘전국 빵집 투어’라서, 안동역에 내려서 가장 먼저 갔던 곳이 ‘맘모스 제과’였는데, 그때도 유명했던 크림치즈 빵은 영접도 못해보았다. 사실 안동찜닭이나 크림치즈빵에 대한 아쉬움이 다음에도 안동으로 향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극제가 되었다. 어떤 도시를 다시 찾는다는 것은 그런 사소한 아쉬움에서 비롯되므로, 너무 모든 것을 한 번에 다 보려 하지 않고 조금씩 여운을 남겨두는 것도 여행이 가진 묘미가 아닐까 싶다.


  이 날의 숙소는 조선시대 고택에서 머무는 한옥스테이로 정했는데,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았지만 아늑한 잠자리였다. 나름 안동 시내에 있었지만 고택 안에서 만큼은 시골에 있는 느낌이라, 풀벌레 소리에 하루 종일 돌아다녔던 여독이 금방 풀리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에게는 이미 오래전 첫 여행에서 가보았던 곳들이라 특별한 것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우리와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살다와서 모든 것이 새로웠던 누군가와 함께 이 도시에서 교감했던 것이 이 여행을 처음의 여행과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주었다. 

치암고택 (2014)

**이 여행을 계기로 여행 플랜 짜는 것에는 도가 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차 시간, 각 도시별 여행지, 장소별 이동 거리, 교통수단, 숙소 등을 완벽하게 맞춰서 다녔다.


크리스마스의 안동

안동 시내 (2018)

  두 번째 여행에서 안동은 나에게 다음에 다시 와서 크림치즈빵을 먹고 병산서원을 보고 가라는 숙제를 남겨주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 마음속에는 남아있었지만 더 이상 안동에 갈 기회는 없어 보였다. 어느 날 TV 예능에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안동 신시장에서 왔다는 앙버터 스콘을 황홀한 표정으로 먹는 것을 보고 이제는 안동에 가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를 끼고 전날에 월차를 내서 오랜만에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안동역으로 갔다.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는 그날까지 시간이 안 맞아 나중에 시장의 유명한 찜닭집에서 만나기로 했고, 나는 일찍 도착한 여유 속에 가장 먼저 달려가 앙버터 스콘을 사고는 근처 학교 앞 작은 서점에서 책을 한 권 사서 시내에 새로 생긴 별다방에서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여기가 서울이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지극히 평범한 어느 쉬는 날 같은 하루였다.


  이번 여행이 그동안의 여행과 다른 점은 가려고 계획한 많은 장소를 제한된 시간 안에 다 보기 위해 아등바등 달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되도록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싶었던 것이 어린 날의 나였다면, 지금은 없어진 체력이라도 살리기 위해 쉼과 여유를 필사적으로 찾게 된 것이다. 숙소도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 예민해져서 누군가와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이 힘들어 늘 혼자만의 방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층 침대가 3개나 한 방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 것은 이런 숙소라도 감지덕지하며 잠을 청했던 어린 날의 내가 있었음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병산서원 (2018)

  다음 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드디어 병산서원을 경유하는 하회마을 행 버스를 탔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병산서원을 가지 못했던 이유는 하회마을 코스에 포함시키기에는 시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병산서원 가는 버스도 하루에 3대밖에 없다. 교과서에서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절경이라 칭송하는 ‘만대루’가 대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했었기에, 이번엔 병산서원 한 곳만 둘러보고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사실 일찍 움직인다면 버스가 병산서원에서 잠시 둘러보고 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 때문에 그 버스를 타고 하회마을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욕심조차 없어져서인지 왠지 그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하회마을을 지나 멍하니 먼길을 돌아가고 싶었다. 우리는 다시 안동역 앞으로 돌아가서 그래도 안동에 왔으니 유명한 간고등어 정식을 먹고 서울에서 만나는 것처럼 늘 그렇듯이 SNS에서 찾은 카페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옛것을 보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맘모스제과 (2014, 2018)


  친구는 안동이 처음이었음에도 하회마을과 월영교를 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별빛 아래 산책을 했고 오랜만에 단잠을 잤고 앙버터 스콘과 크림치즈빵을 먹고 병산서원에 다녀왔다. 아쉬워하는 건 각자의 생각 나름인 것이고, 다음 기회라는 것도 있으니 지금의 시간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겨울에 보는 풍경과 여름에 보는 풍경은 확연히 다르기에, 그리고 그 사이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만휴정과 우리나라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가치를 인정받았기에, 안동은 여전히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우리를 서울로 보내주었다. 


  옛 모습을 지켜가는 도시는 다시 와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안정감이 있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도 그 옛 모습이 좋아서, 혹은 옛 것의 가치를 새로 탐구하기 위해 우리는 오래된 도시를 계속 찾는다. 그러나 오랜 역사가 남아있는 도시도 새로운 세대를 위해 변화를 거듭한다. 오랜 시간을 지켜오던 KBS 드라마 세트장이 지금은 한옥 리조트로 변모한 예가 그러하듯이, 항상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도 본다. 그런 안정감과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안동을 찾게 하는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이제 누구와 또 하회마을에 갈지는 모르지만 다시 가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오게만드는 진짜 자극제는 안동의 맛있는 음식들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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