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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Jul 01. 2020

6. 공주, 부여 1/2

스무 살, 혼자 한 첫 외박 여행

  인생에서 처음으로 겪어야 하는 일들이 있다. ‘여행’이라는 행위 속에서도 첫 해외여행이라든지, 첫 가족여행이라든지,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처음이 될 수 있다. 스무 살, 부모님의 품을 떠나 혼자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자유를 누리게 되었을 때,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새로운 곳에서 최대한 오래 머물며 그 지역의 볼거리를 다 보고 오는 것이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낯선 서울 땅을 휘젓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슬슬 나 스스로 떠날 때가 되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였다.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2010)

  그때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이 왜 백제문화권이었던 공주와 부여였을까라고 생각해보면, 가장 먼저 ‘서울과 많이 멀지 않아서’라는 이유였다. 갓 스무 살이 된 성인으로서 대범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선택은 옳았고, 아직도 잊지 못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가 국사 교과서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1학기 교양과목 중에서도 역사 속의 문화유산을 수강했기 때문에, 역사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을 때였다. 역시나 문화유산은 관광지 선택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관광 자원이다. 신라시대의 유적은 비교적 근래에 부산과 가까웠던 경주에 다녀와서 어느 정도 호기심이 해소된 상태였고, 서울 땅에서 조선시대 한양 도성에 대해 체험 학습까지 했으니, 이제는 서울에서 위례로부터 시작되었던 백제의 문화유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제의 옛 수도에 직접 가봐야겠다는 결심이 든 것은 혼자 올림픽공원에 가서 몽촌토성 유적을 보고 온 직후로, 어떤 학문적 의무감이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의 본고장인 공주와 부여로 이끌었다.

공주 입성 (2010)

  그 당시에 나와 같이 역사적 호기심을 함께 해소할 수 있는 상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과감히 혼자 백제의 옛 수도 공주와 부여를 주말의 시간 동안 내 맘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낭만적인 기차여행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공주에는 기차역이 없으므로 고속버스를 타고 가면서 각종 밤 판매 팻말이 적힌 도로를 지났다. 공주에는 밤이 유명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당시 서울에서도 위례성 백제문화제에 대한 홍보가 한창이어서, 여행 날짜를 백제의 옛 수도에서도 열리던 백제문화제 행사 시기와 맞추었다. 마침 부여에 백제의 궁궐과 가옥을 재현한 백제문화단지가 새로 개장했던 때였다. 

공주 입성 (2010)

  공주에 도착하자마자 축제가 열리는 금강 근처 공원에 가서 엑스포 박람회 같은 세계 문화 전시도 보고, 가장 긴 인절미 떡을 만드는 행사에서 떡도 몇 점 주워 먹기도 했다. 그때는 ‘가서 어느 맛집을 가야지', ‘잠은 어디서 잘 자야지’하는 개념도 없이 넘치는 체력으로 여기저기 무작정 돌아다녔다.


공주 - 무령왕릉공산성

공주 송산리 고분군 (2010)

  고마나루를 떠나 그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백제의 가장 찬란했던 문화의 극치를 엿볼 수 있는 송산리 고분군, 그 유명한 무령왕릉이었다. 내부는 박물관에서 재현된 모형으로 둘러봐야 했지만 드디어 책에서만 보던 무덤 내부를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들떠있었다. 특히나 백제 시대의 유적은 실제로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눈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새로우면서도 그 순간이 재밌기만 했다.


인절미 축제 (2010)

  그리고 그 날의 하이라이트는 인절미 축제였다. 첫날에 무엇을 사 먹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난다 했더니 기네스북에 오를 세계에서 가장 긴 인절미를 만드는 행사를 했었는데, 그 틈에 끼여서 인절미를 원 없이 먹었다. 낯선 곳에서도 잘 먹고 잘 돌아다니는 본능은 그때부터 남달랐다. 가난한 대학생을 배불리 먹여준 그 행사가 무령왕릉을 제치고 공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공산성, 공주시내 (2010)

공주의 마지막 코스로 공산성에 걸어가 산 한 바퀴를 빙 둘러보고 내려왔는데, 하루 종일 혼자 걸어 다녔던 탓에 지친 나머지 대충 사진만 툭툭 찍고 왔다. 스스로 최악이라고 그때의 여행 일기에 썼을 정도로 힘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공산성이 어땠는지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인 듯하다.

지쳤다, 공산성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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