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혼자 한 첫 외박 여행
부여 - 궁남지, 백제문화단지, 국립 부여박물관, 정림사지, 부소산성
백제의 대표적인 유산이 남아있는 도시는 공주와 부여이지만, 좀 더 볼거리가 많은 곳을 뽑자면 부여를 택하겠다. 서울에 일본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 서울의 많은 볼거리들을 제쳐두고 직접 차를 끌고 부여까지 데려갔을 정도로 알차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도시이다. 이는 처음 부여에 갔을 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재밌고 선명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때의 나를 다시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와서 저녁을 간단히 해결하고 누군가 부여 시내에 하나밖에 없는 찜질방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는 여행 후기를 보고 어떤 패기에서 왔는지는 아직도 궁금하지만 진짜 그 찜질방에서 6천 원만 내고 밤을 보냈다. 씻는 것도 해결하고 잠이 제대로 들었는지 새벽에 일어나 보니 눕기 직전엔 텅 비어있던 찜질방 로비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게 충격이었다. 알람 소리가 시끄럽다는 자던 아저씨의 성화에 쫓겨나듯이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에 나와 혼자서 궁남지까지 걸어갔다. 지금도 없지만 이때도 참 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새벽녘의 궁남지는 내 모든 여행 기억 중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날이 밝아지자 안개로 가득 찬 연꽃 연못이 펼쳐졌는데, 그 장면이 너무 우울해서 해가 뜨고도 몇 시간 동안 그 벤치에서 앉아있었다. 이 좋은 곳을 나 혼자 왔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연못 가운데에 있는 포용정에서도 가만히 앉아 시간이 흐르는 것을 기다렸는데, 그때도 스무 살로서 나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간관계의 고민을 안고 있었기에 나 자신만의 감성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궁남지에서 나온 시간도 아직 이른 아침에다 다음에 갈 예정인 백제문화단지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통편이 많지 않을 때였다. 이동하기 위해 가진 건 두 다리뿐이라 걸어가자니 너무 멀었는데, 그때 부여에는 서울의 따릉이보다 먼저 생긴 공공자전거가 있었다. 경주에서의 끔찍한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결심한 건 정말 스스로에게 극한의 상황이었다. 아침이라 도로에 차들은 많지 않았지만, 혹여라도 넘어질까 봐 출발하고 나서 처음 만나는 백제교 위에서는 정말 후들후들 떨었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한국전통문화학교를 지나 백제문화단지 자전거 주차장에 자전거를 걸었을 때, 앞으로 평생 못 탈 줄 알았던 자전거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것에 기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 기분과 함께 새로 만들어진 백제문화단지를 가뿐하게 둘러보고 나왔다.
잘 지어진 세트장 같은 느낌도 있었지만 천도한 시대별로 백제의 주거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학습의 장이어서, 7년이 지나 일본에서 친구 남매가 한국을 찾았을 때, 부여에 가서 이곳을 둘러볼 정도였다. 서울의 궁궐도 좋지만 활발한 교류로 일본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백제 문화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 좀 더 색다른 한국의 역사 체험일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트라우마도 극복했으니 다시 부여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야 할까 고민했으나 백제문화단지를 떠날 그 시간에는 운 좋게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다시 들어가 제대로 된 점심을 먹었다. 부여에서 유명하다는 연잎밥을 먹고 싶었는데 2인분이 기본이라 눈물을 머금고 된장찌개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연잎밥은 7년 뒤 부여에 함께 갔던 일본 친구들과 기어코 먹고 왔다. 친구도 지금까지 먹어본 한식과는 달랐는지 매 년 편지가 올 때마다 연잎밥에 대해 이야기한다. 역시나 부여는 외국인들에게도 보여줄게 많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부여는 여러모로 인상 깊은 곳들이 많았다. 백제문화단지의 다음 여정은 10년이 다 되어가도 그 여운을 잊을 수 없는 국립 부여박물관이었는데, 이 곳에는 한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인 백제 금동대향로가 전시되어 있는 곳이다.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밝게 빛나고 있는 금동대향로의 위엄과 사진으로는 자세히 볼 수 없었던 세세한 조각 하나하나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불교와 도교가 결합된 세계관을 금동으로 만든 향로 하나에 이렇게 섬세하게 표현해놓을 수 있는지 감탄하면서 그 자리에서 몇십 분을 가만히 서있었다.
그 후로 많은 유물이나 세계의 유명한 그림들을 실제로 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때의 충격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이러한 충격이 있기에 교과서 밖의 체험 학습을 계속해서 갈구해왔고, 20대의 첫 여행에서도 역사적 가치를 몸소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하였다. 지금은 오로지 휴식이나 힐링이 개인적인 여행의 화두가 되었지만,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시 탐방에 있어서 역사 체험에 대한 애정과 학구열로 가득했다.
정림사지로 넘어와 정형화된 백제 돌탑의 미학을 볼 수 있는 5층 석탑과 박물관까지 둘러보니 부소산성을 둘러볼 시간이 촉박하여 정림사지 앞에 있는 공공자전거를 다시 빌렸다.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입장시간에 맞추어 들어갔더니 부소산성은 확실히 산에 있는 유적지였다. 오르막을 올라가다보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낙화암은 산의 둘레를 돌아 30분 정도를 올라가야 했는데, 전날의 공산성과 마찬가지로 거의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막판 스퍼트를 올리듯 단숨에 올라갔다. 탁 트인 전망의 낙화암까지는 도달했지만 고란사 등 다른 장소들은 시간에 쫓겨 제대로 못 보고 내려왔다. 그 기억이 아쉬워서인지 일본 친구들과 다시 갔을 때는 여유 있게 천천히 주변도 돌아보면서 낙화암은 물론 고란사까지 내려갔다가 돌아 내려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백마강의 나룻배는 못 탔으니 부여는 다시 한번 갈 기회를 붙잡아두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궁남지의 활짝 핀 연꽃을 내 눈으로 담고 싶다.
정말 지독하게 알차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는 내 스무 살의 첫 외박 여행이었다. 그때만 해도 힘들었는지 첫날 서울에 돌아가자고 마음이 약해졌단 걸 그 당시의 일기장에서 발견했는데,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 다음날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고, 그때의 여행이 여태까지 많은 도시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자전거는 정말 잘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