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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May 04. 2020

1. 부산 1/2

죽어도 묻히고 싶은 나의 고향

  나의 살던 고향인 부산은 아마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나의 고향이다. 여행책에도 어디에도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부산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더운 게 싫고 추운 게 싫어서


  지극히 나의 주관을 담아, 부산은 모든 도시와 비교해 봤을 때, 전국에서 기후적으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이다. 적어도 내가 몇 주 혹은 몇 개월, 몇 년 동안 살아본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지금 살고 있는 서울과 비교해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계절인 겨울만 해도 발에 감각이 없어지고 얼굴 살이 찢어질 듯한 영하의 추위를 서울에 와서 처음 경험했다. 심지어 4월에도 눈이 내렸다. 서울에 갓 올라와서 추운 공기에 얼굴을 처음 맞대었을 때 이미 서울은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서울에 뿌리를 내리고 싶지 않았다. 


  여름에도 부산은 바다와 인접하여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쉽게 달궈지지 않고 서서히 식어 많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적당히 덥고 적당히 춥다. 살면서 도쿄의 여름이 제일 더운 줄 알았더니 작년(2018년) 서울의 여름은 40도까지 올라갔다. 지금 영하 10도는 우스운 정도인데 이렇게 기온차가 많이 나다니, 전 세계의 메트로폴리스 중에서 서울이 기후적으로 가장 살기 힘든 도시이지 않을까 한다. 도쿄는 적어도 겨울엔 따뜻했으니까. 뉴욕도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면 대체적으로 전국에서 부산이 겨울에 기온이 가장 높았고 여름에 기온이 수도권보다는 낮아서 ‘음 역시 부산이지’라고 내심 뿌듯해했다. 이런 수치를 위협하는 도시가 있었으니, 바로 제주도였는데, 마찬가지로 내가 사회로 나가 정착할 이상의 도시를 찾기 위해 몇 달 살아보니 ‘이곳은 아니다’라며 기꺼이 짐을 싸 부산으로 돌아왔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해양수도 부산 (2013)


그냥 살다 보니 미래도시가 되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아래로는 수영강이 흐르고 뒤로는 장산(634m)의 맑은 공기를 제대로 마실 수 있는 산 아래 동네 재송동이다. 배산임수의 조건을 완벽히 갖춘 천혜의 땅이지만 부산 사람이 아니면 그런 동네가 있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부산사람들 조차 어디 박혀있는지 모르는 생소한 동네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동네이니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다.


  재송동의 관할 구는 해운대구이고 위치 상으로는 해운대구와 동래구의 경계에 있다. 흔히 해운대구의 동들, 신도시가 있는 좌佐동, 달맞이길과 해운대 해수욕장이 있는 중동, 마린시티, 센텀시티까지 랜드마크 부산의 모습을 하고 있는 우佑동을 해운대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너머 변두리에 우리 동네와 더 고갯길을 따라 올라가면 반여동, 고개를 넘어가면 반송동이 있다. 여기 변두리가 내 생활 반경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 동네는 중심부와 변두리의 경계선 상에 있었다. 바다 쪽으로 내려다보면 마천루가 세워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고, 산 쪽으로 언덕을 올라가 보면 새벽 2시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미식 로드가 펼쳐졌다. 우리 집은 그중에서도 도대체 언제 평지가 나타날까 의심이 드는,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 가운데에 있는 아파트 20층 꼭대기에 있었다. 우리 집에서 해운대 쪽으로는 멀리 광안대교가 보였고, 동래 쪽으로는 사직야구장의 불 켜진 모습까지 보였다. 그곳에서 15년을 살면서 동네가 급격히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에서 보이는 동네 전경 (좌 2009, 우 2013)


  초등학교 6년 동안 급경사만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학교를 다녔을 때에는 동네가 정말 지긋지긋했다. 왜 우리 집은 저렇게 높은 고바위에 있어서 길이 이 모양일까. 다행히 중학교는 역시나 산 중턱에 있었지만 집에서는 나름 평지로 이어진 길이어서 편하게 다녔는데, 동네가 급변한 건 그때부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본래 수영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학교였는데 왠 시커먼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시야를 다 가려놓더니, 심지어 거기에 산다는 아이들이 전학을 왔다. 산동네 아이들 사이에 맨 아래 강변 옆 평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존재는 이질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비행장이었던 빈 땅 부지에 대형 마트가 들어오고, 건너편에 전시컨벤션센터(BEXCO)라는 것이 생기고, 그 일대를 센텀시티라고 하면서 넓은 도로가 만들어지고 아파트와 고층 빌딩들이 급격히 늘어났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벡스코 건너편에 롯데백화점이 생기고 그 위에 영화관도 있다며 좋아했더니, 바로 그 옆에 기네스에 등재된 세계 최대 백화점이라고 떡하니 들어서는 게 아닌가. 하굣길에 벡스코 앞에서 우리 동네로 올라가는 버스로 환승하면서 이게 내가 알던 우리 동네인가 멍하니 쳐다볼 때가 많았다. 컨테이너만 빼곡히 쌓여있던 허허벌판이었는데.


센텀시티 문화권 (자칭, 2010, 2014)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집에 내려올 때마다 달라지는 동네 모습에 놀라곤 했다. 어느 날 아빠와 장산에 올라 해운대를 내려다보았는데, 

장산 중턱 약수터에서 보이는 해운대 풍경 (2013)

“우와 저기 저 밑에 저거 뭐예요? 억수로 높네 짓는 거 한 번도 본 적도 없는데 벌써 다 지었구만”

“저게 마린시티다 72층짜리 젤 높은 아파트”


10년 동안에 강산이 급격히 변하면서 센텀시티 길 건너편에 있던 우리 동네도, 심지어 옆동네 반여동도 산속에 콕콕 박혀있던 아파트들이 너도나도 이름 앞에 ‘센텀’을 붙이면서 우리 가족은 저기도 센텀이 붙었다며 지나갈 때마다 비웃었다. 





  세월이 흘러 우리 집도 센텀시티가 있는 너머로 건너가지는 못했지만 15년 만에 드디어 꼭대기에서 맨 아래 대로변으로 내려왔다. 제주도에 있을 때 돌아와 보니 집이 바뀌어있었는데, 이사를 가면 더 이상 그 전망을 내려다볼 수 없다는 것에 이사 가지 말자고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센텀시티 문화권과 더 가까워진 데에 이점이 상당히 많아서인지 이제 전에 살던 집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자전거로 수영강을 달리면 센텀시티를 지나고, 영화의 전당도 지나고, 마린시티나 광안리해수욕장까지 닿을 수 있다. 더 멀리는 해운대 해수욕장까지도. 대신 날다람쥐처럼 뛰어올라 다니던 장산 꼭대기와는 멀어졌지만 그래도 산 입구까지는 멀지 않아 코스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장산은 곁에 있다. 지금의 우리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지금은 주민등록상 주소를 옮겼지만, 언젠간 꼭 다시 해운대로, 재송동 주민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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