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묻히고 싶은 나의 고향
산복도로의 도시
부산에 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해운대 바닷가나 광안대교, 최근에 들어선 마린시티라는 해안도시로 고착되고 있다. 그러나 부산의 진짜 모습은 바닷가 관광지 미래도시가 아닌 ‘산복도로’를 끼고 그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산복도로와는 멀리 떨어진 해운대 변두리에서 20년 넘게 자라왔던 내가 ‘산복도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산복도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와 동생, 사촌 동생들은 중구청 맞은편 산복도로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한 천주교 병원에서 태어났다. 할머니 집은 산복도로 중턱에 있어서 엄청난 경사의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올라야만 겨우 갈 수 있었다. 버스만 아래위의 큰 도로를 지나다니고 교통의 혜택이라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이어서, 혼자서 이곳저곳 놀러 다닐 수 있게 허락을 맡기 시작했던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부터는 힘겹게 산 아래의 남포동 시내를 걸어 다녔다. 우리 집도 그렇고 할머니 집도 그렇고 왜 다 오르막을 올라야만 있을까 원망하면서. 이렇듯 부산의 이미지는 경사진 산비탈에 형성된 도시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부산진구 수정동에서부터 동구·중구·서구·사하구·사상구 엄궁동에 이르는 2만 여 km에 이르는 산복도로는 말 그대로 부산 도심에 우뚝 서있는 산 허리를 가로질러 산 위와 아래를 연결한다. 6.25 전쟁 때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내려와 산 중턱까지 무허가 판자촌을 짓고 살았던 것이 지금의 산복도로 도시가 형성된 배경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대청동에 있는 할머니 집에 갔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와 산 아래로 내려가 용두산공원에 가거나 산 위로 올라가 당시 생긴 지 얼마 안 되었던 민주공원에 가서 비둘기에게 밥을 주며 놀았다. 사실 그때는 그 동네가 걸어 다니기 상당히 불편한 동네인 것만 인지했을 뿐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이 희한하게 생긴 동네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어렸을 때 마냥 소라 모양의 원형 통로가 있는 신기한 건물이 부산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곳이며, 근현대사 학습의 장임을 알게 되었는데, 현장체험학습을 빌미로 혼자서 할머니 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버스인 43번 버스를 타고 민주공원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항상 할머니 집에 가기 위해 내렸던 산복도로 입구 병원 정류장을 지나쳐 민주공원 종점까지 버스가 내달렸는데, 차창 밖으로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부산항의 전경이 낮은 건물 사이사이로 보였다. 산 능선을 타고 빼곡히 박혀있는 있는 집들과 부산항이 펼쳐져있는 풍경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낯설고도 신기했다.
민주공원 옥상의 민주의 횃불 앞에서 보는 풍경은 또 다르다. 이 전망대는 부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만의 힐링 장소이자 부산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다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다. 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버스가 보이고, 산 아래에 집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고, 바닷가에서는 부산항의 복잡하고 분주한 모습이, 그리고 저 멀리 빼꼼히 해운대의 마천루가 보인다. 이곳에 이 동네가 낯선 다른 동네 친구들이나 타지에서 온 친구들, 심지어 일본 유학시절 만난 친구들까지 부산 여행 코스 1순위로 데려오기도 했다.
이건 나만의 비밀 코스인데 이 글을 빌어 특별히 공개하기로 한다. 부산 탐방의 처음 시작이 민주공원이라면, 걸어서 비탈길을 슬금슬금 내려가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로 보수동 책방골목이다. 고등학생 때 보통 인터넷으로 문제집을 구입했지만 책방골목에서는 가격이 부담스러운 두꺼운 자습서도 새 것 같은 헌책을 거의 반값에 살 수 있었고 새 문제집도 인터넷 할인가보다 더 싸서 자주 가곤 했다. 옛날 일본 아이돌 잡지나 철 지난 베스트셀러를 사는 재미도 쏠쏠했다. 책 냄새를 맡는 것이 좋아지고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흥미를 불어넣어준 건 책방골목의 역할도 컸다. 지금은 관광지로 변모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서 그런지 헌책방이 절실히 필요했던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곤 한다.
보수동 책방 골목 다음 코스는 부평 깡통시장과 국제시장이다. 두 시장은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보통 깡통시장에 먼저 내려가 일본에서 먹었던 수입과자들을 사거나, 배고프면 서서 리어카의 팥죽이나 팥빙수를 먹기도 하고, 놀러 온 친구들과는 유부주머니와 떡볶이를 먹었다. 그러고는 길을 건너 국제시장으로 넘어가 구제 옷을 구경한다. 구제 옷, 가방, 모자 등을 파는 잡화 골목을 지나 쭉 내려가면 광복로 패션거리와 만나게 된다. 소위 남포동이라고 불리는 부산사람들의 구도심 시내. 대영극장, 부산극장 등 오래된 영화관이 있어 초기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던 곳이다. 영화제가 열리던 시기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연예인 한 번 보겠다고 메인 무대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지금은 센텀시티의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BIFF 광장의 역사는 아직도 남아 거리에 핸드프린팅과 포스터들이 영화의 거리 남포동을 추억하고 있다.
광복로 끝까지 가면 부산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옥상 전망대가 있는 백화점이 있고, BIFF 광장에서 대로를 건너면 자갈치 시장이다. 나의 부산 구도심 투어는 남포동에서 우리 집으로 한 번에 가는 버스를 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부산의 진짜 모습을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나만의 코스이다. 이바구길, 감천문화마을 등 산복도로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자원을 발굴하면서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나, 우리 가족, 나아가 부산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산복도로가 부동산 개발이익에 굴하지 않고 오래오래 그 모습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써 나갈 전국 각 도시에 대한 글은 내가 살던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산을 벗어나 새로 정착한 ‘서울’도 부산에 대한 비교를 통해 의미를 갖게 되었고, 다른 도시들도 내가 살던 도시와의 온도 차이를 느낀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만큼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애정을 느끼고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한 편으로는 변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며 내 기억을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이 더 크다. 중학교 교실 창문에서 내려다봤을 때 우뚝 서 있던 그 고층 아파트들이 생겼을 때부터 도시는 급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 변화의 과정 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변해버린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않았던, 달맞이 언덕을 덮어버리는 해운대 해변의 107층짜리 초고층 빌딩도 입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부산은 여전히 내가 죽어서도 묻히고 싶은 도시이며, 오래오래 나의 기억 속 그 자리에 모든 것들이 계속 남아있기를 바라는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