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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May 06. 2020

2. 경주 1/3

경주에서의 사계절

  경주는 부산과 아주 가깝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이지만, 거리상 외갓집이 있던 거제도보다 훨씬 가깝고 교통도 편리해서 아주 어릴 적부터 경주에 갔다. 서울 사람들에게 수학여행으로 가는 곳 이라던 경주는 부산 초등학생들에게는 봄가을 소풍이나 수련회의 성지 같은 곳이었다. 


  경주는 평탄한 분지 지형에다 도심의 유적지들은 가까이에 분포되어 있어서 도보여도 좋고 자전거로도 편하고 알차게 역사여행을 할 수 있다. 경주역을 이용해서도, 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서도 대릉원~첨성대~동궁과 월지~교촌마을~분황사(황룡사지)~경주박물관 등은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경주 여행의 1순위 코스이다. 지금은 폐역이 되었지만 해운대역에서 경주역으로 가는 2시간짜리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것도 짧게 기차여행을 하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좋았고, 노포동에서 1시간도 채 안 걸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냥 좋았다. 

동해선 센텀역 (2020)

  시간이 흘러 우리 집이 아랫동네로 이사를 가고 바로 앞에 동해선 역사가 생기면서 굳이 신해운대역까지 가지 않아도 경주행 무궁화호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감사한 일이 있을 수가. 집에 있던 자전거를 기차에 그대로 실어 갈 수 있으니 동네 마실 가는 것 마냥 경주에 간다. 자전거를 끌고 가기 귀찮을 때는 천천히 대릉원 일대만 도보로 둘러보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지금도 ‘경주병’에 걸리게 되면 연휴를 얻어 부산으로 내려갈 때를 이용해 이렇게 훌쩍 다녀오곤 한다.


경주역 (2015, 2016, 2020)


  국사를 배우던 청소년기에는 ‘경주병’이라는 것에 처음으로 걸려 찬란했던 신라의 역사를 어린 시절의 아련한 기억 대신 학습 효과가 배가 되는 현장 체험학습의 명목으로 아빠와 함께 해운대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경주에 갔다. 그러나 고바위 언덕 아파트 꼭대기에 살던 부산의 여고생은 올림픽 공원에서만 탈 줄 알던 자전거를 빌려 경주에서 처음으로 도로에 나가게 되었는데, 분황사로 가던 도중 길에 서있던 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 길로 서로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슬픈 일화가 있다. 그 후로 자전거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 한동안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슬픈 사건 이후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6년 후 결국 경주에서 아주 멋지게 일본 친구와 자전거 투어를 해냈다. 


경주의 사계절


  이렇게 경주는 6살 때부터 만들어진 최초의 여행에 대한 기억들로 이루어져 있고, 지금은 부산이 아닌 곳에 있는 가장 가까운 나만의 안식처이다. 늘 그 자리에 서있는 유적들이지만 계절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반해 매 년 다른 계절에 경주가 궁금해지곤 한다. ‘경주병’은 심적으로 지칠 때가 되면 그 계절에 맞춰서 발병을 하는데, 왜 이 병에 걸려서 어느 계절에 훌쩍 경주로 떠나고 마는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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