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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미에 May 16. 2020

3. 속초 1/2

웅장한 설악산과 검푸른 바다의 낭만

  이 글들은 내가 머물다 간 도시들에 대한 잔상이 주된 내용이지만, 애정을 듬뿍 담아 쓸 수 있는 도시는 몇 개가 채 되지 않는다. 글의 차례로도 알 수 있듯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내가 사랑하는 도시 중 하나가 속초이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는 자연이나 역사가 도시 안에 그대로 살아 숨 쉬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경주는 역사와 함께하고 속초는 설악산과 동해바다가 도시를 끌어안고 있다. 높은 산이 있고 깊은 바다가 있고 걸어 다니면서 소도시만의 문화적 체험까지 할 수 있는 속초라는 도시를 참 좋아한다.


강원도 내일로 여행계획서 (2012)

  속초에 처음 가 본 것은 추위와 눈에 정면으로 맞서 보기로 한 겨울 강원도 ‘내일로’ 여행 때였다. 사촌동생과 동해~강릉~속초~정선~영월 등 강원도 일대만 기차로 여행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도시는 바로 속초였다. 다른 도시에 비해 드라마 ‘가을 동화’에 나온 ‘갯배’나 ‘1박 2일'이 다녀갔던 ‘아바이마을’의 ‘오징어순대’, ‘생선구이집’ 등 몇 개의 목적지만 정해놓고 기대감 없이 떠났던 도시였는데, 그럴수록 예상치 못한 놀라운 풍경을 맞이하곤 한다. 그 풍경에 반해 경주병에 이어 속초병이 생길 정도로 이따금씩 떠나고 싶어 지는 나만의 도시가 되었다.







등대전망대 (2012)


속초의 첫인상


  속초에 대한 첫인상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특별해서 평생 지우고 싶지 않다. 처음 속초에 갔던 내일로 여행 때는 기차역이 없어 강릉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올라가야 했고, 젊은 배낭여행자들에 대한 관광 인프라가 별로 없었다. 설악산 케이블카와 이름난 휴양 리조트들이나,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된 아바이마을의 아바이순대가 이름나 있던 정도였다. 갓 20대에 접어든 가난한 기차 여행자들은 숙소에 대한 선택지도 마땅치 않아서 당시 속초에 유일하게 존재하던, 여관을 개조한 것 같은 외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그러나 '올드보이' 느낌 나는 빨간 벽지 사이로 놓인 이 층 침대들과 방마다 욕조가 있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화장실을 가진 이 희한한 숙소가 이번 여행에 방점을 찍어주었다.


  속초는 작은 도시여서 마음만 먹으면 갯배 타는 곳에서 중앙시장과 시외버스터미널을 사이에 두고 영금정, 등대전망대까지 걸어서 갈 수 있다. 물론 돌도 씹어먹을 수 있었던 20대 초반의 체력 기준이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첫 번째 코스로 등대전망대까지 걸어갔는데, 버스를 타고 속초에 들어오면서 그 말로만 듣던 민족의 명산 설악산을 처음 보고는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지만, 가파른 등대 계단을 올라가 내려다본 속초의 전경은 놀라웠다. 도시에 대한 기대를 거의 하지 않아서 그런지 더 극적으로 느껴지는 장관이었다. 

등대전망대 (2012)

  수평선만이 보이는 광활한 동해바다는 전날까지 지나왔던 동해시나 강릉에서는 보지 못했던 검푸른 색을 띠고 있었고, 20년 동안 늘 보던 해운대 앞바다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바다 색깔이었다.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한 검은 바다의 위압감에 놀란 것도 잠시, 뒤를 돌아보니 속초 시내의 모습과 함께 눈에 덮여 등줄기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난 웅장한 설악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 뚜렷하게 보이던 태백산맥의 산세는 속초의 이미지로 뇌리에 박혀서 이후로도 속초를 찾을 때마다 그 이미지 그대로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하곤 한다. 나라는 인간은 한낱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고봉(高峯)들 앞에서 설렘을 느끼게 된 것도 설악산을 실제로 본 이 날부터였다. 실제로 높은 산들을 좇아서 스위스 고봉의 여러 전망대에 올라 알프스 산맥을 직접 눈에 담고 왔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고봉들의 위용을 충분히 느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속초의 등대전망대이다.

처음 보는 겨울 동해 바다 색깔 (2012)


  저녁으로 그 당시에도 유명했지만 점포는 속초 중앙시장 내 한 군데밖에 없었던 만석 닭강정을 사들고 숙소로 들어왔는데, 겨울이라 여행자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4인실을 둘이서 독차지하게 되었다. 무려 TV까지 구비되어 있는, 모텔 느낌이 다분한 방 안에서 드라마 ‘해를 품은 달’ 2회 본방송을 보며 뼈 있는 닭강정을 뜯어먹었다.


“여주인공 오빠로 나오는 사람 처음 보는데 배우인가?? 엄청 잘생겼네”

“와 누구지?? 신인 배우인가 보다”

—— 핸드폰 검색 ——

“엥 아이돌인데?? '제국의 아이들' 이래! 임시완이라는데”

“헐 충격적이다.. 9명 중에 저런 꽃미모가 있었다니”


첫 속초 여행의 기억은 임시완의 얼굴을 TV에서 처음 본 충격과 함께 너무나도 강렬해서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 기억을 좇아 속초를 방문할 것 같다. 첫 여행으로부터 5년 뒤 다시 그 게스트하우스의 빨간 벽지 앞에서 닭강정을 먹었는데, 5년 뒤에도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재개발 바람에 휩쓸리지 않기를...


속초 더 하우스 호스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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