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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Nov 25. 2018

아플 거 같아



요즘은 일주일에 30km 이상 달린다. 50km를 달릴 때도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다. 좋아서 달린다. 뱃살이 빠지면 행복하겠어, 혼잣말을 하지만 다이어트가 목적도 아니다. 빠지지도 않는다. 지난달에 한 대회에 참가했는데, 날씨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힘들었다. 달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는 건, 달리기가 힘들기 때문이구나.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매우 결정적인 이유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날, 무척 덥고 습했는데 페이스를 늦추진 않았다. 1분 정도 더 빨리 피니시라인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아, 아니다, 대회 끝나고 이딴 생각하는 것도 습관이지. 못했으면 못한 거다. 아무튼 기분은 좋았다. 대회에 나가면 낯익은 얼굴을 많이 본다. 조용히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거나, 먼발치에서 눈빛만 주고받거나, 끌어안고 웃거나, 못 본 척 흘겨보며 지나간다. 그들 모두를 좋아한다. 러너니까. 

그런데 다리가 아프다. 정확하게는 발바닥 여기저기가 아프다. 특히 아치가 너무 아프다. 쉬어야 할 것 같다. 돌아보면 <러너스월드> 창간 이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나뿐 아니라 편집부 모두. 여름이 되어서일까, 기자들도 부쩍 힘들어 보인다. 힘들면 일하는 속도도 늦어진다. 그러니까 편집장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자들을 닦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느라 나도 더 힘들다. 너희만 힘들고, 난 안 힘들어,라고 적으면 착한 편집장처럼 보이겠지만 그럴 마음 없다. 나도 힘들다.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기자가 편집장보다 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힘들기만 한 게 아니라 외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지금, 아치가 아프다. 외로워서 더 아프다. 그러나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 달리기 자체는 물론이고, 일로서의 ‘달리기’ 역시 마찬가지다.

차영우는 <러너스월드> 막내 기자다. 최근에 진지하게 퇴사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지쳤기 때문이다. 영우는 글을 쓰는 게 힘들다고 했다. 나는 네가 가진 재능으로 그깟 장애물 따위 넘어버리라고 했다. 헛소리였다.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나는 영우를 놓치고 싶지 않다. 영우는 정교하고 창의적이다. 그리고 열망이 강하다. 누가 그런 후배를 잃고 싶을까? 

김지혜는 몇 달째 회복 중이다. 최근에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달리고 나면 지혜는 늘 아프다. 나는 지혜에게 걸으라고 말한다. 지겨워질 때쯤 조금 뛰고 다시 걸으라고 말한다. 지혜는 조급하다. 지혜가 처음 아프다고 말했을 때 나는 <슬램덩크> 강백호가 떠올랐다. 지혜는 순식간에 달리기를 배웠고, 일취월장했다. 부상도 빨리 찾아왔다. 지금 지혜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 나는 견디면서 달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묵묵히 참고 기다리는 게 지혜에겐 훈련일 것이다. 

윤성중은 <러너스월드>의 팀장이다. 그는 무적이다. 회사를 떠날 마음도 없고 몸도 안 아프다. 하지만 나한테 이달 내내 혼났다. 부족하거나 잘못해서 혼난 게 아니다. 내가 편집장이고 그가 팀장이기 때문에 나는 혼을 내고 그는 혼이 난다. 팀장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따위 사람이고. 성중이가 며칠 전에 나에게 ‘제가 가진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문장이 적힌 메일을 보냈다. 나는 괴로워서 울었다. 그 문장은 사실일 것이다. 윤성중은 능력이 부족할 것이다. 그걸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안다. 그래서 우리가 달리는 것이다. 능력이 넘쳐나는 사람은 없다. 이건 상투적인 위로가 아니다. 나는 우리 안의 작은 우주를 믿는다. 그 우주 안에서 우리는 무한대다. 나는 성중이가 마침내 그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기다릴 것이다. 

세 명의 후배들보다 나은 게 나는 없다. 빈말이 아니다. 나는 편집장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일에 대해 기대감을 나타날 때 나는 늘 문제없다고 말한다. 문제가 보여도 문제없다고 말한다. 극복해 내는 게 내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무패 복서가 아니다.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더 많다. 나는 그저 나의 달리기를 할 뿐이다. 어떤 능력을 더 갖추고 있다면 그건 정직하게 경험을 쌓아왔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감히 누군가에겐 이겨내라고 말하고, 누군가에겐 여유를 가지라고 말하고, 누군가에겐 우주를 발견하라고 말한다. 내가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생한 시간을 모아 세계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책임져야 한다. 아치가 아파도 달려야 한다. 순식간에 회복하고 다시 달려야 한다. 나는 두렵지 않다. 두려워도 두렵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요즘 내가 강하게 확신하는 한 가지는, 수년이 지난 후에 우리 넷이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든, 우리가 함께 일했던 시간들을 기어코 기필코 돌아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우리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여름이라서 더 힘든 게 아닐 것이다. 쉬지 않고 달려왔기 때문에 힘든 게 아닐 수도 있다. 같이 <러너스월드>를 만들며 더 잘하고 싶어서, 그만큼 간절해서 아픈 것일 수도 있다. 잡지는 늘 독자에게 바쳐져야 한다. 그러나 이달, 감히, 편집장의 작은 권능으로 8월호 <러너스월드>를 세 명의 기자들에게 바친다. 부디 이들의 열망이 그 누구도 아닌 이들 자신에게 닿기를. 

고맙습니다. 


<RUNNER'S WORLD KOREA> 2018. 08 편집장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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