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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Dec 10. 2018

욕이 나와

2018 뉴욕 마라톤 후기

2017년 우승자 셜레인 플레너건은 당시 결승선을 밝으며 욕을 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중 하나가 뉴욕 마라톤의 코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뉴욕 마라톤 코스는 뉴욕의 다섯 지역을 모두 지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테이튼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브루클린, 퀸즈, 브롱크스를 지나 마지막엔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로 들어온다. 센트럴파크는 큰 공원이어서 경치가 아름답다. 곧 결승선이 보일 것만 같아 잠시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무려 2마일을 더 달려야 한다. 와, 이 구간은 상대적으로 엄청 길게 느껴져서 욕이 나온다. ‘아, XX 안 끝나?’ 뉴욕 시민들이 뉴욕 시티 마라톤에 대해 갖는 자부심은 대단한데 코스를 보면 알 수 있듯, 뉴욕 모든 지역의 대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과 지역을 나름 공평하게 잇다 보니 코스가 평탄하지는 않다. 속도를 올려볼까, 라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이, 계속 오르막길이 나온다. 오르막길이 끝나면 당연히 내리막길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다리다. 가파르고 길고 짜증 나는 다리가 계속 나온다. 뛰는 건 당연히 어렵고, 걷는 것도 어렵다. 다리가 나오면 여기저기서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같이 달린 친구들이 다리는 다섯 개였다고 말해준 것 같은데, 음, 나는 열 개쯤 건넌 것 같은데… 걔네들이 거짓말하는 게 분명하다! 아무튼 응원하는 시민들이 ‘마지막 다리’라고 영어로 쓴 응원 팻말을 들고 있는 걸 보고 ‘고맙다, 18’이라고 혼잣말을 한 기억이 난다. 풀코스를 달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 코스를 달리고 나서, 아, 여긴 정말 최악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풀코스 경험이 없는 사람은 풀코스를 뛴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깨달을 것이다.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면 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경과 고난? 유독 뉴욕 시티 마라톤은 역경과 고난이 더 많이 찾아오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뭐 상대적인 거니까,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곳의 역경과 고난은 유난히 가파르다. 그래서 욕이 나오고, 마지막엔 눈물이 난다. 그 거리를 기어코 내 발로 다 밟으며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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