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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Dec 10. 2018

고맙습니다

2018 뉴욕마라톤 후기

레이스 전에 달리기 동료 한 명이 카톡으로, 지금까지 훈련해온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었다. “네”라고 대답했다. 두렵지 않았다. 작년에 가까스로 지나오던 거리를 다시 달렸다. 자꾸만 감정이 복받쳤다. 그래서 자주 눈을 감았다. 모든 순간들이 나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프까지는 빨리 뛰었고, 나머지는 천천히 뛰었다. 악명 높은 코스답게 업힐이 말이 안 되게 심했다. 다리에 쥐가 났지만 그냥 뛰었다. 다리가 안 움직이면 잠깐씩 앉아 있었다. 맨해튼의 오르막에서는 걸었다. 작년에도 걸었는데 그때는 땅을 보았고 오늘은 하늘을 보았다. 눈물이 났지만 울지 않았다. 이게 뭐라고… 멋쩍어서… 센트럴파크에 들어섰을 때 24마일 표지판이 보였다. 빨리 달렸다. 어차피 곧 멈출 거고 한 동안 달리기는 안 할 거고, 그러니까 이게 정말 마지막이야,라고 혼자 말하면서. 봄의 나와 여름의 나, 가을의 내가 거기 있었다. 정말 거기 있었다. 반드시 다시 와서, 내가 더 잘 달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고 다짐하던 내가, 거기 있었다. 400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무릎이 아팠지만 안 멈출 거라서 신경 안 썼다. 주변을 둘러보며 크게 숨을 들이쉬고 주먹을 쥐었다. 나는 차분했다. 걸음 하나하나를 읽듯이 느끼면서 피니시라인을 지났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잘했다고, 자랑스럽다고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주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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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응원해준 분들 고맙습니다. 무심한 격려조차도 제 안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나 봅니다. 그 언어들이 발을 움직이게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이럴 수가… 기어코 저를 피니시라인에 들어서게 만들었네요. 달리기는 외로운 일이고 결국 혼자 하는 겁니다. 그러나 혼자서 끝끝내 달리는 힘은 저에게서 나오는 게 아닌가 봅니다. 그러니 같이 달려 주신 셈이지요, 여러분이요!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정말로 지금 이 순간, 이 행복을 담을 수만 있다면 여행 가방에 실어서 여러분들에게 가져다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미치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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