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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n 15. 2020

열등감을 알아야 열등감을 느끼지

오늘의 다짐



열등감이 나를 자극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지난 몇 년 동안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래.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하고 나서 나도 주목이라는 걸 좀 받았던 것 같다. 시집 계약도 빨리 했고, 비슷한 연배의 시인들이 부러워했던 거 같기도 하고. 유명한 문학잡지에 발표도 했다. 시가 별로였는데. 다행인 건지 안 다행인 건지. ‘불행’이란 단어는 적기 싫고… 

시간이 지나고 새로 등단하는 시인들이 생겨나면서 나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시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됐다’라고 적기 싫다. 뭐, 그런데 그것도 별 상관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천재성을 믿었기 때문이다, 라기보다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래서, 나는 열등감 같은 거 갖지 않아,라고 내 안의 우성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런 사람이 ‘됐다’! 정말 나는 열등감을 잘 느끼지 않는다. 정확하게 적자면, 원래 느꼈는데 안 느끼게 됐다.  

그런데 열등감을 안 느끼는 게 좋은 거야? 요즘 나는 나에게 묻고 있다. 우성아, 그냥 열등감을 느끼고, 그걸 극복하려고 애쓰면서,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면서, 시도 더 열심히 썼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우성이는 대답을 안 한다. 할 말이 없는 건가. 인정을 하는 건가. 2009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시인 중에 내 시집이 젤 먼저 나왔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내 두 번째 시집은 도대체 어느 시공간 안에 혹은 밖에 있는 거지? 

열등감에 대해 조금 더 적자면, 나는 내 시를 다른 시인들의 시와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니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없다. 다른 시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그랬을 걸, 이라고 근거 없이 생각해보는 거야. 암튼 그래.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건, 내 시는 전부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열등감에 대해 시로 쓰거든. 무슨 말인지 알겠어? 내 시 자체가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열등감 없이 열등감을 어떻게 써? 사실 열등감 없이 열등감에 대한 시를 쓰기도 하는데, 음… 본질적으로 적자면, 그것조차 동력은 열등감이잖아. 그러니까 나는 열등감에 대해 명확하게 말을 할 수가 없는 거다. 열등감을 느껴? 안 느껴? 시에 대한 것이든 그 외의 것에 대한 것이든? 이런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나로서는. 


- 우성아, 너에게 열등감이란 뭐야? 시 외의 것들에 대한 것은 말고, 시에 대해서 말이야. 

- ... ...

- 아, 열등감도 모르고 열등감에 대해 쓰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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