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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n 16. 2020

시랑 달리기

오늘의 다짐

시 그리고 달리기? 시와 함께 달리기? 이 책 원고를 쓰겠다고 말하자, 내가 좋아하는 누나가(그 누나 이름 시인 김민정) 달리기 하듯 쓰라고 말했다. 나는 만날 달리니까 그럼 글을 만날 써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나는 멀리 오래 달리니까, 글도 그렇게 써야 하는 건가? 생각했다. 달리기 하듯 쓴다는 건 그런 거겠지? 맞지, 누나? 

나는 러너다. 장거리를 달린다. 하루 평균 5~6km. 주마다 30km 정도. 대회를 준비할 때는 50km 이상 달린다.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달려? 안 힘들어? 나는 절대 못할 거야. 그때마다 나는 말한다. 천천히 달려. 한 시간 동안 걷는 걸 생각해봐. 못할 정도는 아니잖아. 그것보다 약간 빠르게 움직이는 거야. 그게 달린다는 느낌인 거지. 그렇게 달리다 보면 5km가 되고, 10km도 되지. 

핵심은 ‘느리게’일까? 음, 그게 핵심은 아니지만, 그 얘기는 이 책 어딘가에서 자세히 하기로 하고, 일단 ‘느리게’가 중요한 건 맞다. 느리게 달리면 멀리 갈 수 있다. 느리게 달리면 풍경이 보이고 어느 한 곳에 사고가 함몰되지도 않는다. 느리게 달리면 내 안의 나와 만나는 순간을 맞이한다(만난다,라고 적으면 그 느낌이 단순해지는 것 같아서…). 그때는 바깥 세계를 달린다는 느낌보다는 가장 멋진 나라는 존재에게 다가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리게 달리면 본질적인 상태가 되고, 느리게 달리면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느리게 달리는 건 어렵다. 느리게 달리는 것에 익숙해지면 몸은 빨리 달리고 싶어 한다. 몸은 그렇게 실행한다. 그 순간 몸과 의지는 다른 존재가 된다. 그때 몸과 화해하는 능력, 이게 장거리 러너의 자질이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 바로 느리게 달리는 것.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느리게 달린다. 그래야 멀리 가니까. 하지만 명확하게 적자면, 멀리 가기 위해 느리게 달리는 건 아니다. 저 앞에 적었듯, 느리게 달릴 때 많은 세계와 만난다. 그러니까 누가 나에게, 달리기 하듯 쓰세요,라고 말한다면, 나에겐 은유적으로 ‘느리게’라는 장면들이 연상된다. 빗대어 내 시에 대해 말하자면, 가끔 어떤 시는 마구 나아간다. 한 줄을 물고 다른 한 줄이 쓰인다. 한 편을 마치면 다른 한 편이 시작된다. 그때 그 흐름으로 나아가도 될 것 같은데, 모르겠다, 왜 그런지… 나는 번번이, 느리게,라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혼잣말은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내 안의 나에게 하는 말이다. 느리게 가자(이 부분에 대해선, 배우 김대명과의 인터뷰에서 더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시 쓰는 것이 달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그렇다. 아 그러고 보면 첫 시집 출간 이후 열심히 달리고 있으니, 시를 열심히 써온 거네? 달리기에 대한 기록이고, 시에 대한 움직임이다. 주어가 없어. 그렇게 쓴 시는 내 몸 안에 있으려나? 


- 달리기가 좋아 시가 좋아? 

- 아 생각해보니 질문이 이상한 거 같아. 달리는 게 좋아 시 쓰는 게 좋아? 

- 나도 나한테 물어보고 있어. 오래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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