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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n 19. 2020

시를 읽지 않는다

오늘의 다짐

시를 읽지 않게 되었다. ‘되었다’라고 적는 게 올바른 건가? ‘않는다’라고 적어야 할까? 모르겠다. 읽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어느 순간까지. 읽는 게 재미없었다. 내 시도 포함된다. 재미없었다. 어느 순간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이 이상한 건가? 하지만 대한민국 시인들이 굉장히 비슷하게 쓰는 한 순간이 존재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든다’고 적는 건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인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그런 한순간이 있었다. 모든 시인들이 어느 한 점에 모이는 순간. 그 순간이 지나가자 모두 흩어져서 다시 한 점만이 남았다. 그러니 한 점에서 모이는 것과 한 점만 남고 흩어지는 게 본질적으론 다르지 않을지도.

다시 시를 읽었는데 혹은 읽게 되었는데, 어느 한 시인의 시가 유독 아름다웠다. 나는 그렇게 써본 적이 없고 쓸 수도 없으니 그와 나는 다른 ‘점’이다. 다르다는 거, 그게 좋았다. 하지만 그 시는 그 자체로도 좋았다. '좋았다'보다 더 좋은 표현이 뭘까? 나는 그걸 못 찾았는데 그 시인은 그걸 찾은 것 같았다. 그걸 시로 만들었다. 나는 '좋았다'는 단어만 쳐다보고 있는데 그 시인은 '좋았다'가 있던 자리에서 '좋았다'를 지우고 그것이 있던 흔적을 그렸다. 나는 지금 그 시인의 이름을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 적지는 않을 것이다.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시를 읽다. 혹은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시와 내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시로 시를 구분해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시가 의외로 많아서 놀랐다. 행복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문득 생각이란 게 들었다. 좋아하는 시를 읽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데 굳이 내가 시를 써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 대답을 적진 않을 것이다. 자존심 때문에.

곰곰이, 내 시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일까, 별로라고 생각하는 시일까? (뭐게?) 어려운 질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는 행복하니까. 하지만 그런 거에 행복해하는 내가 싫어서 나는 금방 불행해졌다. 그래서 다시, 시를 읽을 이유가 없어졌다. 읽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하지 않으니까.

쓰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밤마다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아 천장의 핀 조명을 켜 놓고 아무 생각이나 했다. 베란다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하품을 했다. 그냥 무엇이든 별 이유가 없어서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수년이 지났다.


- 유리 안의 우성아, 너는 내 시를 좋아하니?

- 응. 하지만 내 시는 다 몇 년 전 것들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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