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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n 20. 2020

어느 날 병세 형

오늘의다짐

어느 날, 병세 형

‘새’인가 ‘세’인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 ‘세’ 같다. 중요한 얘긴 아니지만, 형의 이름이니 안 중요한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병세 형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대학교 3학년 땐가. 음. 시를 잘 쓰고 싶은데 같이 시에 대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서 답답하던 때. 병세 형이라는 사람이 복학한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시를 잘 쓰는 형이. 봐도 뭔 말인지 모르는 시를 쓰는 형이. 모르지만 좋은 것만은 분명한 시를 쓰는 형이. 

형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나타나고 금방 사라졌다. 문득 나타나서 어디에서 봤는지 내가 쓴 시에 대해 한두 마디 이야기하고 사라졌다. 

“좋더라.” 

좋았다, 나는, 그 말이. 

형이랑 시에 대해 이야기 한 기억이… 별로 없는데, 나는 그 형에게 시를 배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왜지? 옆에 있든 없든 의지했기 때문일까? 맞는 거 같다. 나는 형에게 칭찬을 받았고, 칭찬을 받았으니 분명히 괜찮은 시인이 될 거라고 믿었다.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쓰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어느 날 병세 형이 사라졌다. 늘 그렇듯 그렇게. 

수년이 지났다. 그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장례식에 갔다. 계속 시를 썼다고 들었다. 평론도 썼다고 들었다. 형은 시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와중에도 시를 쓰고 싶어 했을 것이다. 형이 시를 대하는 마음은 언제나 늘 결핍되어 있었으니까. 등단은 못했다. 하지만 형은 이미 대학생 때도 좋은 시를 썼다. 시인이었다. 그 후에 형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늘 형을 그리워했다. 시에 대해 말하는 형을. 

나는, 시를 열심히 쓰기 위한 동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날 병세 형이 다시 나타났을 때, 동시에 다시 사라졌을 때, 휴, 이런 말은 분명히 촌스럽게 느껴지겠지만, 형의 시를 누군가 이어서 써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적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형을 존중하고 형의 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시가 형에게 저주였을까? 열등감의 근원이었을까? 과연 시가 그런 게 될 수 있기나 한가? 알 수 없다. 나는 다만 형이 좋다고 말한, 그런 시를 계속 쓰고 싶다. 가능한 오래 멈추지 않고, 쓰고 싶다. 형의 말이 좋았기 때문에. 그 말이 나를 이끌고 왔기 때문에. 형을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형은 여기 없고… 다시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응,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형이 나타나서 다시 해줄 때까지. 그렇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시를 쓰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형, 시가 뭔데? 도대체 이게 뭐가 될 수 있기나 한 걸까? 


- 새도 세도, 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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