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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n 25. 2020

이건 정말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

오늘의다짐

그런데 어느 날,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찬 체 달리는 게 싫었다. 얘(스마트워치)가 나를 들여다보는 게 싫었고, 얘가 내 손목을 붙들고 끌거나 잡아당기는 거 같아서 싫었고, 달리면서 계속 얘를 쳐다보며 의지하는 게 싫었다. 나는 그냥, 뭐랄까, 조금 더 자유로운 상태에 머물고 싶었다. 똑똑한 얘가 알려주는 정보로 페이스를 조절하는 대신, 내 몸이 스스로 이해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속도로 움직이고 싶었다.

나 그냥 내 멋대로 달리고 싶었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데, 뭐랄까, 그렇게 대책 없이 달리고 싶었던 건 아니고, 내 몸의 속도를 내 몸에 의지해 내가 찾고 싶었다. 스마트워치를 차고 달리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 그게 목적이다. 왜냐면 그렇게 달려야 멀리 오래 달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건 훌륭한 훈련 방법이다. 그런데 유독 어느 날, 내 몸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맞춰 달리고 싶었고, 그렇게 달렸다. 초반엔 너무 빨랐다. 나도 모르게 그만… 그래서 속도를 늦추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그냥 달렸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평소에 달리던 곳까지 가서 돌아왔다. 그렇게 여러 날을 달렸다. 어떤 날은 시간이 조금 더 걸렸고 어떤 날은 시간이 조금 덜 걸렸다. 이렇게 달리면 실력이 안는다. 뭐, 달리기는 달릴수록 실력이 늘기는 하지만, 페이스란 건, 지표 같은 거여서, 그걸 잘 분석하면서 훈련해야 기록이 더 빨리 단축된달까. 그런데 나, 이우성, 기록 단축하는 거에 관심이 없다!

와, 그러네. 빨리 달리기 위해 매일 달리는 게 아니. 좋아서 달리지. 그러니까 스마트워치가 당장의 페이스를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자주, 달리고 싶은 대로 달렸다.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빨리 달리기도 하고 숨이 차올라 얼굴을 터트리고 허공으로 뿜어질 것 같이 달리기도 하고 겨우겨우 한걸음 옮기며 느리게 달리기도 했다. 한 번의 달리기 안에 달리기에 대한 모든 감정을 담아서, 라기보다 음, 어쩌다 보니 담겼다고 수동형으로 적어야 하나… 아, 그러고 보니 페이스를 일관되게 유지하며 달리는 건, 음, 좀 많이 건조하고 안 인간적이네. 아무튼 저렇게 달렸다. 스마트워치로 페이스를 봤다면 뒤죽박죽이었겠지. 그래서 좋았다. 그리고 당연히, 늘, 시를 생각했다.

뒤죽박죽인 이미지. 뒤죽박죽인 감정. 뒤죽박죽인… 또 뭐가 있지. 계속 저렇게 달리다 보면, 달리는 와중에, 그 뒤죽박죽 속에서 어떤 규칙들, 아니 규칙이라고 쓴 거는 취소하고, 어떤… 방향성? 길?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게 있고 그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에 이어질 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음의 어떤 것을 상상하는 흐름, 그러나 영 불가해한 것은 아닌, 뭐하고 해야 하나 그걸… 발견하고 싶은데, 그 흐름을 내 시의 페이스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름다울 거 같아서. 그런데 나 지금 아름다운 시를 쓰지 못하고 있... 부끄럽고 안타깝고 나한테 내가 미안해하고 있... 생겨서...


- 그나저나 스마트워치를 집에 두고 달리면서 저런 생각을 했어?

- 응.


(그나저나 정말로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그래서 다음 글은, 아주 긴 달리기에 대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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