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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Jun 28. 2020

정말 시에 대한 이야기_감각이 뭐예요?

오늘의다짐

첫 시집 첫 시 제목이 ‘처음 여자랑 잤다’다. ‘여자’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물어본 사람이 많았는데, 성별로 구분해 ‘여자’를 적은 건 아니다. 뭐, 암튼 그게 뭔지를 판단하는 게 내 몫만은 아니니 생략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그 시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는 감각을 내려놓고’ 

(이 ‘감각’은 뭐게? 흐흐. 그냥 한번 물어봤어!)

그런데 정말로 ‘감각’을 내려놓고 싶었다. 당시에 시 꽤나 읽는 사람들은 약간만 난해한 시를 접하면 ‘감각적’이라고 말했다. 난 그게 무모하고 무책임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감각적인 게 뭔데? 왜 뭐만 하면 감각적이라고 하는 거야? 내 시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싫었다. 내 시는 감각적인 게 아니라, 내 시의 특징을 갖고 있는 건데, 왜 감각적이라고 하지? 어떤 시 혹은 시인의 특징을 잘 몰라서 감각적이라고 뭉뚱그려서 말하는 거 아닌가?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뭐, 그게 엄청나게 큰 문제는 아닐 거다. 엄청나게 큰 오류도 아닐 거고. 간편한 단어겠지…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나 평론가 중에서도 감각적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걸 감안하면 내가 쓸 데 없이 예민하게 구는 걸 수도 있다. (매우 인정하는 부분이야!)

아무튼 나는 다짐하듯 썼다. 첫 시집 첫 시에! 아, 기억을 떠올려보니, 심지어 첫 줄에 썼다! ‘감각’ 내려놓았다고. 한 번도 감각적이려고 해 본 적이 없고, 감각으로 시를 써본 적도 없고, 그 ‘감각’이란 게 뭔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시가 감각적이라는 얘기 자체가 틀린 거니까…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려놓을 감각도 없는 거 아냐? 그러네! 나 뭘 내려놓은 거지? ‘감각이 뭐예요?’라고 썼어야 하는 건가? 

그 시의 다음 행은 ‘기억 안 할 거야’다. 기억 매우 잘 난다. 감각을 내려놓고 기억을 안 하려고 했는데, 아, 내가 그 시를 그런 마음으로 썼지, 뜬금없이 떠올리며 혼잣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연히, 처음 잔 여자가 그래서 누구야? 그때 뭐가 어땠다는 거야? 그때 감각이 뭐가 별로였어? 이런 걸 궁금해한다. 괜찮다. 뭐가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그 시는 나름대로 그 시의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다. 다만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짐한다. 내려놓지도 말고 기억 안 하지도 말자고. 내려놓을 것들과 기억 안 할 것들은 그 의미의 삶을 알아서 살게 되니까. 그럼 난 뭐하지? 바보야, 시를 써야지. 그러네. 그렇지, 우성아. 


- 시를 열심히 쓰려면 어떡해야 하지? 

- 시를 엄청 잘 쓰면 열심히 쓰고 싶을 걸. 

-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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