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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성 May 05. 2021

강백호의 네 번째 시즌

arena homme+, 2021_05

KT 위즈 강백호는 프로 무대에 진출한 이후 만화 주인공 강백호처럼 천재적인 능력을 선보였다. 뭐든 3년은 해봐야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법이고, 2021 시즌은 강백호의 네 번째 시즌이다. 지금껏 만화처럼 잘해온 강백호가 올해도 그렇게 잘할까? 강백호가 강백호를 넘어서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야구 선수 강백호에 대해 들었을 때 마이클 조던이 떠올랐다. 조던이 농구를 그만두고 야구를 했어서. 조던은 야구도 잘했다. 더 잘할 수 있었지만 농구 코트로 돌아왔다. 나는 강백호를 좋아한다. 중학생 때부터 좋아했다. 이건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다. 나랑 비슷한 나이 친구들 중에선 강백호에게 영향받은 사람이 많다. 나는 이삼십 대에 스스로 천재라고 말하며 다녔는데, 그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영향도 있지만, 강백호의 영향이 크다. 강백호도 스스로 천재라고 불렀고, 정말 천재였으며, 나는 그게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만화 말고, 현실에 강백호가 나타난 것이다. 2018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강백호는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리그 최고 투수였던 ‘헥터’의 공을 사뿐히 관중석으로 보냈다. 이전에 이런 일이 없었으니, 만화였다면, 비현실적인 만화였을 것이고, 강백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만화 주인공 같은 활약을 하고 있다. 강백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 과연 강백호가 이름에 걸맞게 만화 같은 활약을 할 것인가, 궁금해하는 글들이 있다. 2018년 봄에는 아마도 그랬겠지. 지금은 웃음이 나온다. 강백호가 정말 강백호가 되었으니까.

강백호는 2018년 올스타전에도 출전한다. 그해 올스타전에 선정된 선수 중 신인은 강백호가 유일했다. 6회 초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이 아니라. 149km를 던졌다. 오지환과 이용규를 삼진으로 잡았다. 강백호는 고등학교 때까지 투수와 타자를 겸했다. 잘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듯 강백호 역시 못하는 게 없었다. 중학교 때는 포수를 봤다.

2018년의 강백호는 타자의 모든 영역에서 고루 잘했기 때문에 특정 부분을 거론하는 게 의미가 없다. 그렇긴 해도 홈런 개수는 특히 주목받을 만한데, 29개를 쳤다. 이게 얼마나 많은 거냐면, 고졸 신인 역대 최고 기록이다. 이전 기록은 강백호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1994년에 LG 김재현이 세웠는데, 21개였다. 이 기록이 20년 넘게 유지되고 있었다. 사실 강백호가 아니었다면 이 기록이 언젠가 깨지기나 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고졸 신인이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홈런을 ‘허구한 날’ 치는 게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강백호는 아빠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호는 하얀 털의 호랑이를 의미하니, 만화 강백호와는 상관없지만, 강백호의 아빠가, 아들 이름을 지을 때 <슬램덩크>의 영향을 전혀 안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나 혼자, 상상을 해보긴 하는데, 딱히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백호’ 즉, 하얀 털의 호랑이는 동양에서 수호신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지금 강백호가 KT의 수호신인 것만은 분명하다. 아, 야구에서 수호신은 투수를 의미하지만, 뭐, 승리에 도움이 되면 다 수호신인 거지!

2018년을 시작하며 강백호는 신인왕이 목표라고 말했다. 팬들은 올스타전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냥 먼저 줘라,라고 말했다. 시즌이 끝나고 강백호는 자기 물건이었다는 듯 당연하게 트로피를 가져갔다.

직전 해 신인왕은 넥센 히어로즈 이정후였다. 이정후가 신인상을 타기 전까지 고졸 신인왕은 거의 맥이 끊긴 상태였다. 이정후의 등장은 ‘사건’이었던 셈인데, 이정후 다음 해 강백호가 등장한 것이다. 당연히 둘은 비교된다. 그래서 나도 비교를 해보자면, 이정후는 빠르고, 강백호는 덜 빠르다. 놀라운 점은 강백호가 느리지 않다는 것이다. 이정후는 정교하고 강백호는 세다. 놀랍게도 이정후 역시 장타력을 갖추고 있고, 강백호 역시 정교하다. 그러니 ‘스펙’으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보통 2년 차 징크스라는 게 있다. ‘보통’은 있다. 신인왕을 받은 선수 대부분이 다음 해에 부진하다. 야구에서 이런 ‘보통’은 과학이다. 내려갈 팀은 내려가고 올라갈 팀은 올라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정후는 2년 차 징크스를 겪지 않았다. 강백호 역시 그렇다. 강백호는 2년 차에 3할 타자였다. 3년 차에도 3할 타자였다. 데뷔 시즌에 2할 9푼을 쳤으니 사실 상 프로 데뷔한 이후 줄곧 3할 타자였다. 편파적이고 위험한 발언일 수 있지만, 강백호는 ‘2년 차 징크스’를 겪지 않으면서 자신이 ‘보통’ 선수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했다. 강백호는 미디어와 팬들이, 도대체 얼마나 잘하나 보자, 라는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는 와중에 그걸 해냈다.

어떤 분야든 3년은 해봐야 전체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법이다. 그래서 2021 프로야구 개막이 나에게는 강백호의 네 번째 시즌 개막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만화 주인공 같은 인물이 현실에서 도대체 어느 정도 해낼지 궁금하다. 전문가들 말은 믿을 게 못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올해 강백호는 지난 3년보다 잘할 거라고 전망한다. 더 잘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1루 수비를 더 잘하는 것? 4번 타자로서 홈런을 많이 치는 것? KT를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것?

뜬금없지만, 강백호의 인터뷰를 아무리 찾아봐도 인상적인 ‘언어’가 없다. 야구에 대한 인식, 삶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 느껴지는 언어. 배트 한 번을 휘두를 때마다 겪는 찰나의 우주에 대해 강백호가 어떤 감정을 끌어안게 되는지 차분히 말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겠지. 나는 강백호가 올해 굉장한 시즌을 보낼 거라고 믿는다. KT가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할지 여부와 상관없이 강백호는 눈에 띌 것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클래스’는 이런 확신을 갖게 만든다. 참고로 나는 한화 팬이어서 딱히 강백호를 응원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기대는, 어쩌면 한국 프로 야구의 레전드가 될 이 젊은 선수가 좋은 인성, 직업에 대한 책임감, 다수의 관심을 받는 자가 지녀야 할 사회적 도리를 만화처럼 훌륭하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기대가 뜬금없긴 하네. 뜬금없거나 말거나 강백호가 멋있는 말을 해주면 좋겠다. 와, 운동 선수가 어떻게 저렇게 철학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 운동 선수가 대한민국에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강백호의 네 번째 시즌에 대한 나의 기대는, 인식과 철학, 즉, 언어다. 요기 베라 같은 명언 제조기까진 안되어도 되지만, 만화 같은 명대사 한 줄 정도는 읊어주면 좋겠는데. 야구를 잘하는 건, 이제 강백호에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강백호가 농구 선배 강백호를 지우려면 홈런보다 멀리 날아가는 무엇인가 필요하지 않을까? 뭐, 안 지워도 물론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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