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재회

- 부겐빌레아

by 미나뵈뵈


참 화려하다고 느낀다.

안에 하얀 작은 꽃을 감싸고 있는 진분홍 포엽의 색깔이. 마치 그 포엽이 풍성한 꽃잎인 양 묵직한 부케 한 다발 같은 인상을 주는 식물, 부겐빌레아.


작년에 퇴근길에 지나치는 한 음식점 앞에 내어 놓은 화분에서 이 식물을 처음 만났다. 아니, 20대 때 미국에서 처음 만난 이래 잊어버리고 있던 꽃을 길거리에서 다시 만나 무척 반가웠다.


아직도 영어 찬송가 사이에 책갈피처럼 남아있는 부겐빌레아의 마른 포엽. 연한 갈색으로 변한 하트 모양의 포엽. 바스러질까 조심스러운 압화.


올해 1월에 제주도의 한림 식물원에서 온실 안에 피어있는 이 식물의 다홍색 포엽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다홍색보다는 진분홍 포엽 색이 더 좋다. 7월쯤엔 작년에 지나쳤던 그 가게 앞에 나와 있는 똑같은 화분에서 다시 피어난 꽃을 만났다.


작년보다 더 싱싱하고 선명하고 풍성한 그래서 더욱 화려하게 느껴지는 부겐빌레아와의 재회였다. 처음 만났다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만나는 것들은 늘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다시 만난 꽃,

다시 만난 사람,

다시 만난 물건,

다시 만난 장소, 등등.




12년 동안 한국을 떠났다가 돌아오니, 다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만난 친구, 다시 만난 이웃, 다시 만난 옛 동료교사.


세월의 길이만큼 그들 신변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기뻐할 일도 있었고, 마음 아픈 일도 더해져 있었다.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들 인생의 가장 젊고 생기 있고 화려한 때였는지도 모른다. 도전하는 때, 기대하는 때, 열정이 넘쳤던 때. 그때 그들은 그때의 '빛'을 가지고 빛났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화려한 때는 그가 자신의 삶에서 맞은 풍파를 거치고 나서 얻게 된 깨달음과 낮아진 자세와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미덕, 그로 인해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향기, 그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안정감, 단단함이 있는 때가 아닐까 싶다.


어느 누구도 최고점에 이르는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삶이라는 시간의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풍파에 단련되어 많이 흔들리지 않는 어떤 품성이 그들을 더 '빛나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체로 화려하다.




"제가 같은 상황에 있게 되니,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을 이해하게 돼요.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고, 제 자신이 겸손해지는 것을 느껴요. 제가 많이 교만해져 있었더라고요."


" 부(富)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욕심이 우리 식구들을 모두 병들게 하고 고통 받게 했어요. 이젠 영원하고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verything can happen. 이 말에 공감하게 됐어요. 저에게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어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을 허락하신 분께 열어드리는 법을 배우게 되었어요. 제가 다른 영역 안에 옮겨졌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거의 20년 넘게 손을 놓고는 있었지만,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전시회는 놓치지 않고 보려고 했어요. 언젠가는 새로 시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씩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떤 힘으로 두 달을 꼬박 병원에서 먹고 자며 간병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나 자신도 잘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기대나 욕심을 많이 내려놨어요. 그 아이도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속상하고 고민을 많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거라고 믿어요."




다시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의 삶의 장면에서 체득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얻고 여기까지 온 그들 모두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그들 중에 나 자신도 살짝 포함시켜서 말이다.


"수고 많았어요.

여러분의 눈물과 상처와 수고가 헛되지 않아요.

여러분은 빛나고 있어요.

지금 당신이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워요.

저 부겐빌레아처럼 말이죠."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