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에서 핀 하얀 꽃이다. 이 *나무 이름의 유래에 관해선 여러 '설'이 있다 한다. 열매의 생김새를 따라 '떼'가 '때'로 바뀌어 불리게 됐다는 설, 열매의 효능 면에서 '때'라는 말 그 자체의 의미를 따라 이름 붙여졌다는 설 등이 있다.
이름이 무엇이든 나의 초점은 꽃이다. 올여름 교실에서 탄생한 배추흰나비를 방사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고 있을 때, 생태공원에 핀 이 때죽나무 꽃을 발견했다. 이 꽃 아래가 가장 좋을 듯했다. 다섯 장의 꽃잎이 모두 땅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를 쳐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처럼 그윽해 보였다. 갓 태어나 날갯짓을 배우려 하는 배추흰나비를 사랑 어린 눈으로, 응원 어린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 같았다.
이 꽃을 볼 때, 내게 떠오르는 낱말은 '우산'이다. 꽃모양이 펼친 우산을 닮았다. 비 오는 날에 우산은 덮개이고 보호와 안전이다. 물론 폭우나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칠 때는, 우산의 보호가 너무 미미하게 느껴지지만 그마저 없어 온몸으로 비를 맞아야 할 때보다는 훨씬 안도감을 준다.
때죽나무의 꽃을 바라보며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첫 번째 질문, 너에게 '우산'과 같은 존재는 누구였니?
두 번째 질문, 너는 누구에게 '우산'과 같은 존재가 되어 주었니 (또는 되어 주고 있니)?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상당히 많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첫 번째 우산은 당연히 부모님이셨고, 두 번째는 언니들이다. 네 자매의 막내라는 위치에서 부모님과 언니들의 내리사랑을 많이 누렸다. 서울로 유학 온 대학생 때는 교회 안에 잘 챙겨주시던 형제자매님들이 계셨다. 결혼하고 나서는 시부모님이, 또한 남편이 나의 우산이 되어 주었다. 학교에선 책임감 강하고 일 처리에 노련한 경력 있는 교사들이 도움을 많이 주었다.
그들은 나의 삶의 고개고개마다 그들 아래로 들어가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존재들이었다. 유난히도 마음이 유약하고 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느리고 어설픔이 많은 나였기에, 그들의 덮개아래 있는 게 참 든든하고 좋았다. 내가 직접 결정하거나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편안했다. 요구받는 것보다 베풂을 받는 것이 많아서 좋았다.
그러나 항상 내가 그런 위치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다. 나도 조금씩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보호와 덮개가 되어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을 발견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우산'이 되어 준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그들의 '우산'이 되어 주고 있을까? 아주 당당하게, 자랑스러워하며, 확고히 말하기는 겸연쩍다. 다만 짐작해 보고, 가끔씩 그들이 고마움을 표현했던 것에 근거해 나열해 보겠다.
첫 번째는 당연히 나의 자녀들일 것이다. 출생의 순간부터 20년이 넘도록, 나의 돌봄과 보호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이들. 그다음은, 낯선 중국 땅에 와서 한국학교에 근무하며 영어를 가르쳤던 원어민 동료교사들. 주로 남아공 국적을 가진 교사들이었다. 영어교과를 가르치고 있었기에, 그들과 가까이 소통하며 지냈다. 한편으로, 그들은 그들의 학생이었던 우리 자녀들에게 우산이 되어 주었다. 밝은 웃음으로 대해주고, 자주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들의 직장 생활에서나 외국 땅에서의 생활에서 정서적 지지와 소소한 도움을 주었었다.
마지막으로는, 귀국하기 전에 근무한 학교에서 5년간 가르쳤던 학생들. 지난 주말에 1년 9개월 만에 잠깐 그곳을 방문해 학생들을 만났다. 키가 크고 몸집이 커졌다. 우리 부부의 깜짝 등장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하는 아이,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 "안 가면 안 돼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었다.
남편은 사물놀이를 가르쳐, 남편에 대해 그들의 스승에 대한 애정이 특별히 강한 제자들이 있다. 나는 영어를 가르쳤기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모든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안다. 다들 두 학년씩 올라가 달라진 모습으로 반가움에 달려드는 모습에 가슴 뭉클했다. 어쩌면 5년간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든든한 우산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아주 커다랗고 튼튼하고 무쇠 같은 우산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심지어 구멍 뚫린 우산이라 할지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보호와 덮개가 필요한 이들에게 잠깐 '공간'을 내어주고, 그들과 함께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필요는 채워졌을 것이다.
우산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말해 본다. 거센 바람에 휙 뒤집혀 버리기 쉬운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할 수만 있다면 '너에게 우산이 되어줄게. 너와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네가 안도할 수 있다면. 사랑과 응원을 담아 너를 바라봐 줄게. 저 희고 고운 때죽나무 꽃처럼 말이야.'
속명 Styrax는 ‘안식향을 산출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Storax’에서 유래되었는데, 실제로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자라는 때죽나무 중에는 줄기에 흠을 내어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 안식향을 얻었던 것이 있다고 한다. 때죽나무라는 이름은 가을에 땅을 향하여 매달리는 수많은 열매의 머리(종자껍질)가 약간 회색으로 반질반질해서 마치 스님이 떼로 몰려있는 것 같은 모습에서 처음에 ‘떼 중 나무’로 부르다가 때죽나무가 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열매 찧은 물로 물고기를 ‘떼’로 ‘죽’여 잡거나 줄기에 때가 많아 검게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또, 옛날에는 열매와 과피를 물에 불린 다음 그 물로 빨래를 한 점 등으로 볼 때 때를 쭉 뺀다는 뜻에서 때쭉나무로 불리다가 때죽나무가 되었다는 추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