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골목

- 꽃과 푸르름이 있어

by 미나뵈뵈

동네를 걷다 보면 시야에 펼쳐진 장면에 미소가 저절로 나올 때가 있다. 오늘은 그 장면들 몇 장을 나누고 싶다.


지난 5월 말, 투표를 하러 가다가 지나친 길에서 만난 장면이다.


담벼락을 배경 삼아 높다랗게 자란 꽃, 그 옆에 알록달록 활짝 웃는 얼굴 같은 키 작은 꽃.


꽃의 이름을 찾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냥 내가 사는 동네를 걷다가 발견한 사랑스러운 꽃으로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내가 쓴 글에 등장하는 꽃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다시 검색해 보았다.


첫 번째, 키다리 아저씨를 닮은 식물은 버들 마편초. 잎이 버들잎처럼 좁고 길며, 줄기와 꽃대가 말채찍(마 편)처럼 생겨 붙여진 우리말 이름이라 한다. 숙근 버베나라고도 불리는데, 여러해살이 뿌리 식물이라는 뜻의 ‘숙근(宿根)’과, 학명 ‘버베나(Verbena)’가 결합된 유통명이라 한다.


두 번째, 선명한 빨강, 아이보리, 주황색 꽃은 가자니아 크랩시아나, 원산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고 한다. 남아공 하면 중국 다롄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원어민 선생님이 생각난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안부를 물으며 사진 한 장을 보내셨다. 그 사진에서 이런 색의 꽃들로 가득 찬 들판을 본 게 기억난다.


여자 원어민 선생님도 꽃을 특별히 사랑하시는 분이셨다. 집안에 항상 꽃이 꽂힌 화병이 있었다. 무엇이든 그녀에겐 화병이 되었다. 작은 유리컵, 비닐 벗겨낸 유리로 된 음료병. 그녀에겐 무엇이든 화병을 채울 작은 꽃장식이 되었다. 가까운 산에 산책하고 돌아오다가 주은 나뭇가지 하나, 솔방울, 풀잎, 작은 풀꽃 하나. 그녀의 테이블 센터피스(Centerpiece, 테이블 중앙에 올려놓은 꽃 작품)를 꾸미는 감각은 아주 뛰어났다.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길은 이런 꽃들이 있어 아기자기하며 정취를 더한다.



대로변의 한 건물을 초록으로 가득 덮어버린 담쟁이 잎, 경의선 숲길에서 숲을 이룬 나무들, 큰 손바닥 같은 가로수 플라타너스 잎.


5월의 이 푸르름을 사랑한다. 생명력 가득한 이 푸르름! 이 푸르름 앞에서 나의 몸과 마음, 시야도 모두 맑아지고 환해진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찬 기운이 엄습하고, 푸르름의 기운이 서서히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10월 말이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에게 '부활'을 믿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생명 인자를 가진 모든 것들은 '살아 있음'을 통해 무한히 뻗어나가며 번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시들고 쪼그라들고 부서지면서 결국은 긴긴 '죽음'의 시간에 머물고 나서, '다시 살아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싱싱함을 자랑한다.


그래서 오늘도 아기자기함이 가득한 나의 동네를 걷는다. 하늘이 회색빛으로 바뀌고 플라타너스잎이 말라가더라도, 담쟁이 잎이 옅은 갈색으로 변해 가더라도, 경의선 숲이 하얀 눈 이불에 덮이더라도, 나는 '믿음의 눈'으로 볼 것이다. 저 색깔 뒤에 숨어 있는 '푸르름'을. 그리고 오늘의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도 음미하며 걸을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