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음과 부활을 통해 열매 맺는
씨앗 하나를 화분에 심어, 싹이 트는 것을 관찰하고 이 싹이 자라 줄기와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거나 다시 씨앗을 맺는 이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나에게 항상 희열을 준다. 자주 들여다보며 작은 변화를 감지할 때마다 느끼는 소소한 기쁨부터 어느 날 꽃이 만개했을 때 느끼는 커다란 기쁨까지...
작년에 교실과 텃밭 상자에서 강낭콩을 키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4학년 1학기 과학책에는 <식물의 한살이>라는 단원이 있다. 한해살이 식물인 강낭콩 씨앗을 심어 싹-떡잎-본잎-줄기와 잎-꽃-꼬투리-강낭콩 수확까지의 과정을 관찰하며 '식물의 한살이'에 대하여 이해하며 여러해살이 식물의 한살이와 공통점과 차이점도 알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학생들은 가정에서 키우면서 관찰하도록 화분과 씨앗, 배양토가 담긴 봉투를 집으로 보냈고, 학교에서도 관찰할 수 있도록 화분 몇 개를 준비했다.
화분에 배양토를 넣고, 미리 물을 뿌려 며칠 두어 몸통이 조금 부풀고 하얀 작은 뿌리가 빼꼼히 발을 뻗은 강낭콩 세 알을 심었다. 작은 화분에 강낭콩 세 그루가 자라는 것은 너무 비좁을 것을 알지만, 일단 싹을 틔우고 어느 정도 자라면 햇볕 잘 드는 텃밭 상자로 옮겨줄 생각이었다.
아침에 등교하면 교실에 들어와 가장 먼저 화분 쪽으로 다가간다. 며칠 동안 물을 살짝살짝 뿌리면서 화분 안을 들여다볼 때, 아무런 일이 없는 듯하다. 덮어둔 흙만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 속의 이 광경을 목격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흙 속에서 ‘저, 여기 있어요! 저 이제 일어나요!’ 외치며 고개 드는 강낭콩 세 알!
‘와!! 너희들 참 장하다! 기어이 뚫고 일어나는구나!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구나. 이제부터 고개 들고 쑥쑥 자라는 일만 남았어. 파이팅!’
교실에서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양지바른 곳에 있는 텃밭상자에 강낭콩을 옮겨 주었다. 교실에서는 식물이 받을 수 있는 햇볕양이 그리 많지 않아 싱싱하게 자라지는 못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교실에 둔 화분에서 자란 강낭콩은 잎 색깔도 연하고, 키는 높게 자랐지만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텃밭상자에 옮겨 심은 강낭콩은 줄기도 굵고 잎도 진초록에 넓고 무성한 잎, 이곳저곳에서 앞다투어 꽃을 피우고 꼬투리를 냈다.
강낭콩꽃은 어떤 것은 아이보리색, 어떤 것은 연보라색을 띠었다. 그 꽃의 꽁무니에 꼬리처럼 작고 기다란 무언가, 동그란 것 몇 알이 들어있는지 올록볼록한 초록색 꼬투리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작은 씨앗 안에 줄기와 잎, 꽃과 꼬투리, 강낭콩이 될 모든 인자(因子 )가 담겨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그 인자(因子 )는 씨앗의 껍질 속에 숨어있다. 흙에 묻히는 죽음을 통과할 때, 그 껍질이 벗겨지면서 그 인자 중 어떤 것은 뿌리로 땅 밑에, 어떤 것은 떡잎으로, 본잎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자라고 자라서는 '꽃'으로 그 식물의 '영광'을 보여주고, 그 열매를 통해 땅에 묻혔던 것과 똑같은 많은 강낭콩을 산출해 낸다. 하나의 강낭콩 씨앗의 많은 재생산인 것이다.
요한복음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RV, KGBR)
씨앗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다. 강낭콩을 심어 이 식물의 한살이를 관찰하면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자신을 한 알의 밀로 비유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이해하게 되어 더할나위 없이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