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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와 매실

- 열매에게 감사를

by 미나뵈뵈

내가 사랑하는 모과와 매실,

둘 다 설탕에 재워 ‘청(清)’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의 삶의 어느 시점에서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반추해 본다.


<모과>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서 마을 집집마다 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었던 게 기억난다. 우리 집에는 감나무가 있었고, 아랫집에는 무화과나무, 대추나무가 있었다. 어느 집에는 모과나무도 있었나 보다. 다른 나무들에 대한 기억은 또렷한데, 유독 모과나무는 누구네 집 마당에 있었는지 어슴푸레하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 지나가다가 ‘모과나무’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것, 마트에서 모과를 발견하자 바로 사서 모과청을 만들고 싶어 한 것의 연원이 어디였을까 생각할 때, 시골 마을 이웃집 담장 너머로 본 나무들 외에는 다른 연원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과는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중에 유독 못생긴 편에 속한다. 우리가 한국에서 흔하게 과일로 먹는 사과, 배, 복숭아, 귤 등은 매끈한 선을 지녔고 구 형태에서 각각 약간의 개성을 지닌 것으로 균형감이 있는데, 모과는 조금 길쭉하고 대충 한 번 꽉 눌러 놓은 찰흙 반죽덩어리 같기도 하다. 거기에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생긴 검은 홈은 배꼽처럼 보인다.


모과야,

외모로 판단하듯 못생겼다고 표현해서 미안해. 하지만 난 네 생김새에 별로 연연하지 않아.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네가 풍기는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야.

단단한 너의 육질을 잘게 채 썰어 설탕 가득 재워 유리병에 넣어 두었었지. 그리고 시간이 지나 네가 ‘모과청’이 되면 집에 오시는 손님들에게 차로 내곤 했어. 그때가 신혼 초였던 것 같아.

중국 옌타이의 쿤위 산(昆嵛山)을 갔을 때, 입구에 네가 있는 걸 보고 난 또 반가웠었지. 중국에서도 너를 만났으니... 작년에 전원주택에 사시는 어느 형제님 댁을 방문했는데, 그곳 마당에도 네가 있었어. 너를 만날 때마다 나는 반가워 사진을 찍는단다. 연둣빛이던 너의 몸이 가을이 되면 노랗게 변해있겠지. 너를 코에 대고 그윽한 향기를 맡고 싶구나. 왠지 너에 관해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너의 향기가 코끝에서 나는 것만 같아.

그런 향기를 가진 너라서 고마워~.



<매실>


아이들이 중고생이 되면서 나에게 조금씩 한가한 시간이 생기자 했던 일 중의 하나가 '매실청 담기'였다. 오동통한 매실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말리고, 유리병에 담아 설탕으로 재워 밀봉. 3개월을 기다려야 완성되는 슬로 푸드!


3개월은 꽤 긴 시간이지만, 잊어버리고 있으면 시간은 벌써 지나 있다. 매실청은 요리에도 많이 이용한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서는 주로 '소화제'로 쓰였다. 남편과 두 아들들이 배부르고 속이 더부룩할 때면 항상 매실청을 찾았다. 물을 살짝 타서 마시고 나서는 속이 편해졌다고들 했다.

매실아,

고마워. 우리 가족의 소화제가 되어 주어서 고마워.

근데 우스운 건 뭔 줄 알아?

네가 매화나무의 열매, 매화꽃이 지고 난 후에 생기는 열매라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된 거야. 매난국죽(梅蘭菊竹), 사군자(四君子)의 하나에 포함되는 매화나무, 그리고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고결한 매화꽃과 너를 연결해서 인지를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꽃 따로 열매 따로. 하하.


우리나라에서는 광양이 매화꽃으로 유명하다고 들었어. 섬진강 주변과 청매실농원을 중심으로 매년 매화꽃 축제도 열린다고. 벚꽃만큼 화사함을 자랑한다고 들었지. 아직 직접 가서 너의 꽃을 보진 못했지만, 네가 될 그 꽃들을 응원한다. 여러모로 사람들에게 유용한 열매가 되는 너를 응원해.

다시 한번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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