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E야?

캐릭터 해석이 필요해

by 김콩순

"혹시 MBTI가 어떻게 되세요?"
"제가 아직 안 해봐서..."
"MBTI 잘 모르시는 걸 보니 혹시 ISTP?"


"우리 내일 어디서 볼래? 미리 예약하게"

"너 혹시 J야?"


어느새부턴가 자기소개를 알파벳 4개로 하기 시작한 현대인들. MBTI는 이제 고전 취급을 받을 정도로 인터넷에는 온갖 테스트들이 난무한다.

우리는 요새 왜 MBTI를 비롯한 각종 테스트에 열광하는가?


첫째로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관심이다. 사람들은 가끔 (혹은 자주)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동기를 명확히 언어화하지 못하기도 한다. 왜 전화 통화가 두려운지 왜 혼자 있으면 외로운지 왜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운지 등등 은근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가려운 곳을 MBTI가 긁어주는 것이다. 내가 속하는 분류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들은 것처럼 느껴진다.


둘째로는 공감대와 소속감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지지와 공감을 받고 싶어 한다. 인터넷의 '제가 이상한 건가요? 남편이랑 같이 보려고 합니다.' 등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글의 존재 이유와도 일맥상통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가까운 사람과 마찰이 있을 때 당사자들의 의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제3자들의 의견이다. 게다가 인터넷 상에서는 이 과정이 매우 손쉽다. 사람들은 댓글을 남길 뿐만 아니라 남의 댓글에 찬성과 반대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인간들을 고작 16개 유형으로 구분한다면 서로 공감대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누구나 조금씩은 맞고 조금씩은 틀린 것처럼 누구나 조금씩은 외향적이거나 계획적이거나 직관적이거나 이성적이다. 일단 본인의 MBTI 유형을 알게 되면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의 설명에 집중하여 읽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과 공감을 주고받는 것이다. 심지어 각각의 유형들은 내향/외향과 같이 이분법으로 구분되어 그 대립구도가 찬반과 같이 명확하다. "저도 J여서 계획 안 하면 불안해요 아니 글쎄 P들은 어떻게 계획 없이... "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지만 왜인지 귀가하면 유독 에너지가 소진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내향인이라는 분류에 안도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유형화하게 된 이후에 더욱이 그 유형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셋째, 최근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과 대면할 기회가 적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혼자서만 자아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알게 된다.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그 안에서 원하는 역할과 모습으로 스스로를 가꾸어 나간다.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은 혼자 있을 때도 정직하게 행동하려 노력하겠지만 남들 앞에서는 조금 더 그렇게 행동하려고 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타인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있던 것이다. 감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많은 사회적 만남들이 비대면의 방식으로 전환되다 보니 그 초기에는 인간관계에서의 결핍이 더욱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넷째로는 인간관계를 잘 꾸리고 싶은 소망이다. 자신의 MBTI만큼 궁금해하는 것이 친구의 MBTI이다. 채팅방에 링크를 공유하며 너도 이거 빨리 해봐, 하며 재촉한다. 궁합이 잘 맞다고 하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 우리의 관계가 더욱 견고하게 느껴진다.


다소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MBTI에 지나치게 몰입하여 모든 인간 군상이 16개의 틀에 딱 맞게 떨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과몰입 좀 하면 어떤가? 웬 바이러스로 인해 집단적 소속감이 약화되었을 뿐 아니라 재미있는 콘텐츠들은 줄어들고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를 정체화할 기회도 귀해진 지금이다. MBTI를 앞세워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자. 까탈스러우신 걸 보니 혈액형이 B형이신가봐요, 하는 것보다는 백 번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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