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찬스

by 김콩순

네 선생님,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 최근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셨다구요. 좋은 아빠가 되는 법이요? 그게 참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저희 아빠는 제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아빠와 딸로 만나지 않았더라도, 살면서 아빠를 알게 되었다면 분명히 존경했을 거에요. 가끔 엄마가 저는 아빠 말씀만 듣는다면서 항의하곤 하시는데 아무튼 저는 아빠가 하시는 말은 좀 더 중요하게 듣게 되는 것 같아요.


가끔 저에게서 제가 아빠 딸이라는 사소한 증거를 발견할 때마다 즐겁고 자랑스러워요. 예를 들어 긍정적인 성격이나 선거 때마다 같은 고민을 하는 모습, 그리고 필체나 코 모양 같은 것 말이에요.


최근에 저희 아빠는 핸드드립 커피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집에 가면 오전에는 아빠가 내려주시는 커피를 두 잔 정도 마신답니다. 요새는 서로 다른 원두를 블렌딩해 주시기도 하고, 필터도 고르라고 하시더라구요. 본가 내려가는 주말 오전이 더 즐거워졌어요.


저도 연구실에서 커피를 내려먹었다고 말씀드렸는데 공용물품은 꼭 학교에서만 먹어야 한다고 당부하시더라고요. 제가 당시에 마침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요. 연구비로 구매한 볼펜을 집에 와서도 써도 괜찮을까, 부터 시작하는 사소한 (그러나 중요한) 고민을요. 제가 고민을 털어 놓지 않아도 저희 아빠는 그런 식으로 늘 저에게 해답을 주고 계셨던 것 같아요. 아빠의 그 한마디로 저는 이제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어요. 가끔 헷갈릴 때는 아빠가 어떻게 하실 지를 떠올리기만 하면 저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거든요.


얼마 전에 가족들이랑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던 사진을 보는데 저와 동생이 어렸을 때 매 주 주말마다 어딘가 놀러갔던 추억들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곤충 좋아하는 저희를 위해 산으로 들로 여기저기 많이 다녔었더라고요.


그런데 2005년에 찍은 사진에 지금의 아빠 차가 그대로 있는 거 있죠. 제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는 동안 아빠는 같은 차를 계속 타고 계셨던 거에요. 민아 대학 가면 바꿔야지, 진욱이 대학 가면 바꿔야지, 하시다가 벌써 17년동안이나 오래된 차를 쓰고 계시네요. 늘 검소하게 절약하시면서 저희를 위해 양보해오셨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최근에 여러 정치인이 부정한 방법으로 자녀를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거나 좋은 회사에 취직시켰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아빠 찬스'라는 단어가 신문에 자주 나오더라고요. 저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속으로 좀 웃음이 나와요. 그런 건 그냥 부끄러운 일에 불과하고 진짜 아빠 찬스를 쓴 사람은 저인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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