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빵사아가씨, 그녀에게 들려주는 결혼이야기

어쩌면 사랑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by 민비

그녀는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빵집의 제빵사입니다. 얼굴이 단아하고 해서 손님들 사이에서는 “예쁜 빵집 아가씨”로 통합니다.

나와의 인연은 내가 빵을 좋아해서 빵집에 자주 드나들다가 어버이날이나 성탄절, 또는 빵집이 아주 바쁜 날에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 터라, 나는 그녀가 몇 살이고 어디에 사는지, 종교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8시지만, 그 시간에 맞춰 갓 구운 빵을 트레이에 진열하려면 준비 시간이 꽤 걸립니다.

매일 새벽 6시, 가게에 도착한 그녀는 습관처럼 가장 먼저 냉장고에서 어제 발효해 둔 식빵 반죽을 꺼냅니다. 아침에는 식빵을 찾는 손님이 가장 많기도 하거니와, 빵을 예쁘게 자르려면 충분히 식혀 단단해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헤라로 반죽을 알맞게 잘라낸 후, 밀가루를 살짝 뿌린 반죽을 살살 굴리다가 밀대로 조금씩 길게 늘여 세 겹으로 접어 한편에 밀어둡니다. 그리고 같은 작업을 몇 번 반복한 후에 버터를 바른 식빵 틀에 세 덩이를 가지런히 담아 미리 달구어진 오븐에 넣습니다.


그때부터는 부리나케 다음 작업이 시작됩니다. 체에 걸러진 고운 밀가루가 눈처럼 하얗게 쏟아져 내리듯, 그녀의 하루도 늘 정해진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반죽을 치대고, 발효를 기다리고, 오븐 속을 들여다보는 시간들. 식빵이 알맞게 부풀어 올라 노릇하게 잘 구워지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그녀가 참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쇼윈도를 통해 언뜻 보이는 그녀의 표정이 부쩍 공허해 보입니다. 길고 짙은 속눈썹 아래로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는 눈은 어쩐지 슬픔이 깃들어 보입니다.

사흘이 지난 후, 나는 빵집에 들러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이유를 물어봅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20대부터 7년이나 길게 이어온 사랑의 마침표를 찍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가슴이 시릴까 싶어 마음도 애틋해집니다.


사랑할 때는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일상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사소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뼈아프게 깨닫는 과정이야말로 이별이 남기는 가장 아픈 기억일 것입니다. 게다가 어느덧 서른 중반을 지나는 나이에 대한 부담감도 그녀를 짓누르는 듯 보입니다.


"내게 다시 사랑이 올까요?"


빵집에는 늘 라디오가 흐르고 있습니다. 음악이 잦아들고 DJ가 작별 인사를 건넬 무렵 그녀는 초콜릿을 중탕하려 전자레인지 문을 열며,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꺼내놓습니다.


“어떤 남자랑 결혼해야 할까요?”


나는 연이어 질문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다 샌드위치를 만들 블랙 올리브가 촘촘히 박힌 치아바타, 남편이 좋아하는 통팥이 듬뿍 들어있는 단팥빵, 아들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에그타르트를 고르며 담담하게 입을 엽니다.


"결혼할 남자는 두 부류인 것 같아요. 하나는 너무 잘나서 내가 그에게 맞추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기꺼이 나에게 맞춰줄 사람이지요."


​그녀는 체념한 듯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작은 희망이라도 찾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되묻습니다.


"다른 부류는 없나요? 이를테면 잘나기도 했으면서 나에게도 맞춰줄 사람."


나는 농담 섞인 말투를 지우고 조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덧붙입니다.


"없어요. 혹시 있더라도 이미 주변에서 눈치 빠른 사람들이 다 채갔지요."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삶이 다할 때까지 우리는 기뻐하기도 하고, 때론 후회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보니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성공은 결코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를 위해 조금 더 애써주고, 나를 위해 조금 더 참아주는 ‘그 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성공한 삶입니다.


나는 레인지 앞에서 멈칫하고 있는, 젊은 날의 나를 닮은 그녀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며 나지막이 덧붙입니다.


"너무 멀리서 찾지 말아요. 어쩌면 이미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요."

계산을 마친 후, ​빵집 문을 열고 나오자 투명하고 부드러운 바깥공기가 가게 안으로 쓱 밀려들어옵니다.

그녀의 삶도, 뜨거운 시간을 견디고 나면 비로소 가장 진한 미를 뿜어내는 오븐 속의 식빵처럼 다시 빛나는 사랑으로 아름답게 완성될 것임을 나는 분명히 믿어 의심치 않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