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없는 기러기_20241025
이번 그림책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보르카가 깃털 없이 태어난 것도, 우연히 크롬비 호에 올라타게 된 것도, 결국 큐 가든에서 지내게 된 것도. 돌이켜 보면 한 순간도 보르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은 아니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 큐 가든에서 보르카가 ‘행복하게 지낸다’고 말해주는 결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말 그랬을까? 나라도 그럴 수 있었을까?’ 그림책 속 보르카의 표정은 대부분 조금 슬퍼 보였고, 마지막 장면도 편안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후련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너는 남다르니까, 남다를 사람들이 모인 곳이 더 편할 거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박차고 나와 내가 진짜 머물고 싶은 곳이 어딘지 찾아 나섰을까? 아마 당장 뛰쳐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거기에 안주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마음 한쪽에서는 분명 계속 묻고 있었을 것이다.
-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고, 어디에 있어야 편안할까? -
사실 나도 ‘다름’ 때문에 조금 움츠러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조금 특별한 점, 사람들과 다른 방식 때문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먼저 나도 모르게 괜히 움츠려 들고, 내 행동을 제한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를 숨기던 때보다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삶이 더 넓어지고 관계도 더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남다르다는 점이 나를 고립시키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다름이 내 삶의 폭을 좁히는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그 다름을 긍정적인 면으로 보고 내 삶을 더 넓게, 풍성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그 삶의 방향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누구일까? 결국,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 나를 규정하려는 말과 시선이 있더라도, 선택지를 넓히고 좁히는 권한은 결국 내 안에 있을 테니까.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보르카를 보면서 느꼈던 불편함은 결국 한 가지 마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내 방식으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직접 찾아가고 싶다.”는 마음. 그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 과정이 우당 탕탕 좌충우돌 이더라도, 때로는 멈춰 서더라도 괜찮다. 그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이건 내가 고른 길’이라는 느낌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내가 선택한 자리에서 천천히, 조금 느릴지라도, 오롯이 나를 위한 길을 걸어가고 싶다. 그 자리는 누구도 대신 정해줄 수 없고, 대신 걸어줄 수도 없다. 오직 나만이 발견하고, 만들어 가고, 지켜갈 자리라고 느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마음속으로 되뇌어 본다. “내가 있을 곳은 내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