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로비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80년 박물관 역사상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600만 명을 돌파하는 순간이었다. 2005년 용산으로 터를 옮길 당시만 해도 134만 명에 불과했던 연간 방문객 수는 20년도 채 되지 않아 4.5배라는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수치만 놓고 본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은 이제 루브르, 바티칸, 영국박물관의 뒤를 잇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톱 4'의 위상을 점하게 되었다.
물론 이 순위가 곧바로 세계적 권위를 담보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축적된 방대한 약탈 유물을 기반으로 한 서구의 박물관들과, 고유한 민족 문화를 중심으로 성장한 우리 박물관을 기계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환호 이전에 냉정히 자문해야 한다. '과연 단순 수치상의 순위를 넘어, 콘텐츠의 질적 경쟁력에서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는가?'
이 600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내방객의 총합이나 순위 경쟁의 승리보다 더 깊은 함의를 지닌다. 이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지층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리는, 일종의 '지각 변동' 신호다. 박물관이 고루한 유물을 보관하는 정적인 수장고에서, 대중의 일상을 파고드는 역동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증명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가장 상징적인 지표는 '야구'와의 비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13개 소속관의 올해 누적 관람객은 1,38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의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여가와 오락의 대명사였던 프로야구를 박물관이 추월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의 박물관은 수학여행 때 줄을 지어 억지로 방문하거나, 방학 숙제를 위해 찾는 '의무 방어전'의 공간에 가까웠다. 혹은 유명 관광지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엑스트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주말의 데이트 코스로, 가족 나들이의 핵심 목적지로 박물관을 택한다. 승패가 갈리는 경기장의 뜨거운 함성 대신, 고요한 사색과 미적 체험을 선택하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여가 소비 패턴이 '단순 오락'에서 '문화적 향유'로 구조적 전환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박물관은 치밀한 공간 전략을 통해 문턱을 낮췄다. 거울못을 중심으로 한 야외 정원은 도심 속 쉼터가 되었고, 세련된 식음료 시설과 어린이 박물관은 관람객을 오래 머물게 하는 '체류형 경험'을 완성했다. '인상주의에서 근대미술까지'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기획전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상설 전시실의 섬세한 큐레이션은 난도를 낮추되 깊이를 더해 박물관을 '어렵지 않은 곳'으로 인식시켰다. 박물관은 이제 관람(Viewing)하는 곳이 아니라 생활(Living)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 거대한 흐름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K-콘텐츠'의 힘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등 글로벌 OTT를 통해 소개된 한국적 모티브와 서사는 전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스크린 속의 이미지가 현실의 유물과 만나는 접점이 바로 박물관이었다. 디지털 세상에서 형성된 문화적 호기심이 오프라인 공간으로의 방문을 유도하는, 온-오프라인의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국립박물관 문화재단의 브랜드 '뮷즈(MU:DS)'가 보여준 성과는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200억 원 수준이던 매출이 단기간에 300억 원을 돌파했다는 뉴스는 박물관 운영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이제 반가사유상을 보고 감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그려진 미니어처와 머그컵, 다이어리를 구매한다. 이는 단순한 기념품 소비가 아니다. 역사와 미감을 나의 취향으로, 나의 일상 소품으로 편입시키려는 '문화적 소유욕'의 발현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박물관 굿즈가 '힙(Hip)'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것은, 우리 문화유산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대적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재해석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박물관은 이제 입장료에 의존하는 수동적 기관이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산업의 최전선에 섰다.
세계 4위라는 순위는 '관광도시 서울'의 인프라 경쟁력을 입증하는 강력한 데이터다. 팬데믹 이후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같은 전통의 강자들도 회복세에 접어들었지만, 아시아의 박물관이 이토록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나 숫자의 화려함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단순한 추격형 성장 모델은 한계가 명확하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왔는가'라는 양적 질문을 거두고, '무엇을 경험하고 돌아갔는가'라는 질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600만 명이라는 숫자가 '인증샷'을 찍기 위한 일회성 방문객들의 합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사람이 몰릴수록 관람 환경은 쾌적함을 잃기 쉽고, 깊이 있는 감상은 방해받기 십상이다. 대중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전시의 학술적 깊이가 얕아지거나, 박물관이 거대한 '포토존'으로 전락할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진정한 과제는 이 거대한 방문 열기를 어떻게 '공적 기억'과 '비판적 성찰'의 에너지로 전환할 것인가에 있다. 박물관은 화려한 유물을 전시하는 쇼윈도를 넘어, 역사적 쟁점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사회적 담론을 생산하는 공론장이 되어야 한다. 다언어·다매체 해설의 고도화, 소외 계층을 위한 접근성 강화, 그리고 지역 박물관과의 유기적인 연계는 박물관이 '한 번 가본 핫플레이스'가 아니라 '삶의 지혜를 구하러 다시 찾는 곳'으로 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600만 번째 관람객으로 선정된 시민은 인터뷰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왔다"고 했다. 지극히 평범한 이 대답 속에 국립중앙박물관의 현재와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미래 세대에게 소비가 아닌 경험을 물려주고 싶고, 자극적인 오락 대신 문화적 유산을 공유하고 싶은 시민들의 집단적 욕망이 오늘의 박물관을 만들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간 600만' 돌파는 하나의 도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다. 우리는 이제 '박물관을 가진 사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박물관적으로 사고하는 시민'을 얼마나 길러낼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유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담긴 시간의 층위를 읽어내고 타임라인 속에서 현재의 좌표를 성찰하는 힘. 그 힘을 기르는 공간으로서 박물관이 기능할 때, 600만이라는 숫자는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획득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문화의 소비자를 넘어 향유의 주체로 거듭나는 중요한 문지방을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