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시즌2, 조림인간 최강록의 서사
흑백요리사 시즌2 우승의 순간, 최강록은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특출 난 음식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국에서 묵묵히 일하는 요리사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요리사로 우승을 거머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수수힘 그 자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수수함이,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흑백요리사 시즌2의 결승전 주제는 '오직 나를 위한 단 하나의 요리'였다. 평생을 손님의 입맛에 맞추고, 심사위원의 기준에 맞추고, 방송의 포맷에 맞춰 요리해 온 셰프들에게 던져진 질문. 당신은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 무엇을 만들겠습니까
최강록은 깨두부를 선택했다. 조림이 아니었다. 그는 '조림 인간'이었다. 연쇄 조림마, 조림핑. 이전 대회에서 조림 요리로 이름을 알린 뒤 붙은 별명들이다. 사람들은 그를 조림의 달인으로 기억했고, 그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살아왔다. 그런데 결승전 무대에서, 그는 고백했다.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얼마나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을까.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우승을 다투는 자리에서, 자신의 대표 기술이 사실은 '척'이었다고 말하는 일. 물론 그는 덧붙였다. 공부도 많이 했고, 노력도 많이 했다고. 그러나 핵심은 그게 아니었다. 핵심은 '척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이라는 고백에 있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척하며 살아간다. 괜찮은 척, 행복한 척, 자신 있는 척.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맞추어 가면을 쓰고, 그 가면이 어느새 얼굴이 되어버린다. 최강록의 '조림'은 그가 세상에 내민 가면이었다. 잘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붙들고 있던 무기였다. 그런데 '나를 위한 요리'라는 주제 앞에서, 그는 그 무기를 내려놓았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좀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위로‘ 그는 우승을 위한 최고의 요리를 하기보단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요리했다. 깨두부 한 그릇에 담긴 것은 기술이나 전략이 아니라, 오랜 세월 '척'하느라 지친 자신에게 건네는 안부였다.
“괜찮아, 이제 그만해도 돼. 조림 아니어도 돼. 그냥 최강록 네가 먹고 싶은 거 해“
심사위원 안성재는 물었다.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었어요?" 이 질문에 대한 최강록의 대답은, “네, 저는 조림 인간입니다. 그... 컴피티션을 한 번 우승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조림 음식을 많이 해서 조림 인간, 연쇄 조림마, 조림핑, 그런 별명들을 얻어 가면서 조림을 잘 못하지만 조림을 잘하는 척했습니다. 사실 공부도 많이 했고요 뭐, 저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 척하기 위해서 살아왔던 인생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에서까지 조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한테 좀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요리 실력을 넘어서 한 인간의 서사를 드러냈다. 그리고 바로 그 서사가, 두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고 보는 이들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음식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기억을 떠올리며, 누구를 생각하며 만들었는가. 최강록의 깨두부에는 그의 인생이 녹아 있었다. 척하느라 힘들었던 날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날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까지.
우승 소감에서 그는 자신을 낮추었다. 특출 나지 않다고, 전국의 요리사들과 다를 바 없다고. 흑과 백으로 나뉜 서바이벌의 형식일 뿐, 실제로는 묵묵히 주방을 지키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다고. 그는 우승의 영광을 자기 것으로 독점하지 않았다. 대신 그 의미를 음식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렸다.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승자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정상에 올라서도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않는 사람. 화려한 조명 아래서도 어둠 속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기억하는 사람. 최강록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대신,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곳에서 받은 말들을 가슴속에 잘 담아서, 이곳에서 만난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더 열심히 음식에 대해 생각하며 살겠다." 최강록은 자만하지 않겠다는 다짐. 더 열심히 하겠다는 약속. 그러나 그의 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음식에 대해 생각하며 살겠다'는 표현이었다. 요리를 하겠다가 아니라, 음식을 생각하며 살겠다. 이 미세한 차이에 그의 철학이 담겨 있다. 요리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것.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곧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
조림을 내려놓은 남자는 결국 우승했다. 그러나 진짜 승리는 트로피가 아니었다. 자신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척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 그것이 최강록이 이 무대에서 얻은 진짜 상이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당신도 이제 그만 내려놓아도 된다고. 잘하는 척, 괜찮은 척, 그 무거운 가면을 벗어도 된다고. 오늘 하루쯤은 당신 자신을 위한 한 그릇을 차려도 된다고.
“수고했다, 조림인간!. 그리고 수고했다, 흑백요리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