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과 같은 거리, 다른 눈으로

- 다 필요 없고 도망가고 실어 25화 -

by 마르코 루시

출근길이었다.


아니, 출근길이었던 길이었다.

아침 여덟 시.

예전이라면 지하철역을 향해 뛰고 있었을 시간.

하지만 지금은 휴직 중이었다. 뛸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발이 그쪽으로 향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산책을 하려고 현관문을 열었을 뿐인데,

몸이 먼저 기억하는 방향으로 걸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안은 비어 있었다.

아침 여덟 시, 대부분 이미 출근한 시간이었다.

내려가는 버튼. 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하루의 전쟁이 시작되곤 했다.

이 공간이 관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좁은 벽, 형광등, 거울. 숨을 참고 서 있어야 했던 공간.

존재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어두는 시간.


거울 속 얼굴이 비쳤다. 잠깐 들여다봤다.

달라진 건 표정이었다. 특별히 밝지는 않았지만, 깨물려 있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하루를 시작하던 얼굴이 아니었다.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숨을 쉬는 것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몰랐다.

1층 문이 열렸다.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빠져나왔다.

예전에는 이어폰을 꽂고 걸었다.

늘 같은 음악, 주변 소리를 차단하기 위한 음악.

출근길은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고,

음악은 그 시간을 덮어주는 이불 같은 것이었다.

오늘은 이어폰을 꽂지 않았다.

처음으로 이 길의 소리를 들었다.

새소리가 어디선가 울렸다. 전봇대 위인지,

나무 사이인지 알 수 없었다.

1년 넘게 이 길을 걸었는데,

이 길에 새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빵집 셔터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매일 이 시간에 열었을 것이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버터와 밀가루가 섞인 냄새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리스본 알파마의 골목이 떠올랐다.

아침마다 빵 냄새가 계단을 타고 올라오던 숙소.

"Bom dia"라고 인사하던 빵집 점원.

서울에도 아침마다 빵을 굽는 사람이 있었다.

매일 이 시간에, 이 골목에서. 나는 이어폰 속에 갇혀서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발걸음이 느려졌다.

멈추진 않았지만, 예전 속도는 아니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길을 8분 만에 주파했다.

신호등 타이밍까지 외워서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역까지 갔다.

멈추면 지각이었고, 지각하면 하루가 틀어졌다.


오늘은 빨간불에 걸렸다. 서서 기다렸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핸드폰을 보거나, 커피를 들고 있거나,

이어폰을 꽂고 멍한 얼굴을 하고 있거나.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신호가 바뀌었다.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나도 걸었다. 하지만 속도가 달랐다.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천천히 걸었다.

뒤에서 누군가 옆으로 비켜 지나갔다.


지하철역이 보였다.

계단 입구.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듯 내려갔다.

그 앞에서 멈췄다. 예전에 여기서 돌아섰다.

지하철을 타지 못하고 돌아섰던 날. 전화기를 끄고,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던 날.

'이대로 도망치면 좋겠다'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던 날.

같은 계단이었다. 같은 입구. 같은 타일 바닥.

금이 간 타일 하나까지 그대로였다.


발을 내딛는 순간, 계단의 차가운 감촉이 신발 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한 계단, 두 계단. 지하로 내려갈수록 바깥의 햇살이 멀어졌다.

교통카드를 찍자 삐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열렸다.

그 기계적인 소리가 묘하게 반가웠다. 익숙한 소리였으니까.

플랫폼에 섰다. 바람이 불어왔다.

열차가 다가오는 바람. 터널에서 밀려오는 무겁고 따뜻한 공기.

한때 이 바람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또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압박이 바람과 함께 밀려오곤 했다.


오늘은 그냥 바람이었다.

지하에서 불어오는,

기름과 먼지 냄새가 섞인 바람. 그뿐이었다.

열차가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물결처럼 밀려 들어갔다.

나도 그 흐름에 몸을 실었다.


차 안은 빼곡했다.

아침 여덟 시 반의 지하철은 언제나 이랬다.

누군가의 어깨가 닿았고, 가방이 다리에 부딪쳤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

이 안에서도 숨을 죽이던 때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그랬듯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지우는 기술은

오래 연습할수록 완벽해졌다.

이번에는 숨을 참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예전과 달랐다.


회사 앞 역에서 내렸다.

개찰구를 나오는 순간, 매일 아침 마주하던 풍경이 펼쳐졌다.

커피 전문점, 편의점, 횡단보도. 정장 입은 사람들이 빠르게 걸었다.

ID 카드가 목에 걸려 리듬에 맞춰 흔들렸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편의점 앞을 지나고, 골목을 꺾었다.


회사 건물이 보였다.

유리 외벽에 아침 햇살이 반사되고 있었다.

로비 안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다.

문이 열릴 때마다 에어컨 바람이 새어 나왔다.

건물 앞에 서서 올려다봤다. 12층. 내 자리가 있던 층.


예전에는 이 건물 앞에 서면 가슴이 조여왔다.

유리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나는 사라지고,

직함과 업무와 보고서만 남는 기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건물 속으로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그냥 건물이었다. 유리와 콘크리트로 만든 건물. 높지만 거대하지는 않았다.

저 안에서 누군가는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모니터를 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닦고 있을지도 모른다.

들어가지 않았다.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예전에도 이 건물 앞에서 돌아선 적이 있었다.

그때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돌아선 것이었다.

숨이 막혀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서,

출근이라는 단어 자체가 벽처럼 느껴져서.

지금은 달랐다. 볼 만큼 봤기 때문에 돌아서는 것이었다.

이 건물이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같은 동작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의미가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건물 옆 화단 벤치에 잠깐 앉았다.

한 번도 앉아본 적 없는 벤치였다. 매일 지나치기만 했던 곳.

출근할 때는 볼 여유가 없었고,

퇴근할 때는 빨리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벤치 옆 화단에 튤립이 피어 있었다.

빨간 튤립. 누가 심었는지 모르지만,

건물 그늘에서도 피어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커피를 하나 샀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아침 공기에 섞여 작게 피어올랐다.

벤치로 돌아와 앉았다.


빠른 걸음, 구겨진 서류봉투, 텀블러.

한 여자가 힐을 신고 빠르게 지나갔다.

한 손에 핸드폰, 한 손에 가방.

나도 저랬다. 얼마 전까지.

커피가 미지근해질 때까지 앉아 있었다.

이 건물 앞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일이었다는 걸 몰랐다.


돌아오는 길.

출근 시간이 지나서 차 안이 한산했다.

앉을 수 있었다. 아까 지나왔던 역들이 거꾸로 지나갔다.

동네 역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왔다.

아침에 지나쳤던 빵집 앞을 다시 지나갔다.

안에서 손님이 트레이를 들고 빵을 고르고 있었다.

발걸음이 멈추고, 소보로빵 하나를 샀다.

종이봉투에서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졌다.


걸으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달고, 바삭하고, 부드러웠다.

리스본의 나타와는 달랐고,

포르투 빵집의 갓 구운 빵과도 달랐다.

동네 빵집의 소보로빵이었다.

매일 아침 이 골목에서 구워지던 빵.

그 맛이 좋았다.


집 앞에 도착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 얼굴에 빵 부스러기가 묻어 있었다.

손으로 턱을 쓸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현관 손잡이를 돌리며 생각했다.

오늘 한 일이라곤 예전 출근길을 걸은 것,

지하철을 탄 것, 회사 앞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신 것,

빵 하나를 사 먹은 것.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처음으로 들은 것들이 있었다.

새소리, 빵 굽는 소리, 셔터 올리는 소리.

처음으로 본 것들이 있었다.

빵집 간판, 화단의 튤립, 벤치의 존재.


매일 걸었던 길이었다. 전부 거기 있었다.

매일 아침, 매일 저녁.

하지만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숙이고, 숨을 참으며 지나쳤을 뿐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길을 다시 걸었다.

그 길은 여전히 같은 길이었다.

다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길이 더 이상 도망치고 싶은 길은 아니라는 것.

길은 처음부터 그렇지 아니었다는 것.


달라져야 했던 건 길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다.

소보로빵의 달콤한 냄새가 아직 코끝에 남아 있었다.

뭔가 새로운 것들이 다가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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