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빗물은 마르고, 자국은 남는다

by 마르코 루시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다.

하늘을 찢을 듯 울리던 천둥소리도, 광장을 삼킬 듯 쏟아지던 폭우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남은 것은 대리석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와, 공기 중에 부유하는 짙은 물비린내뿐이었다.

이윤은 우산을 접었다.

투명한 비닐 막이 사라지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도 다시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 서로의 체온을 나누던 밀착은 이제 없었다. 하지만 이윤의 셔츠 한쪽 가슴은 그녀의 뺨이 닿았던 자국 그대로 젖어 있었고, 클레르의 머리카락에서도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커피."

그녀가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짧게 말했다.

그것은 제안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그들은 중정기념당 근처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오래된 목조 건물 1층에 자리 잡은 카페는 어둡고 조용했다. 천장에서 돌아가는 실링팬이 눅눅한 공기를 느리게 휘젓고 있었다. 팬의 날개가 돌 때마다 경첩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를 새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창가 밖 테라스 자리에 마주 앉았다.

주문한 따뜻한 우롱차 두 잔이 나왔다. 찻잔 위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클레르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그친 거리는 다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은 오토바이들이 물을 튀기며 지나갔고, 관광객들은 다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빠르게 원래의 속도를 회복하고 있었다. 오직 두 사람만이 그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젖은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내 패션쇼가 망했어요."

그녀가 불쑥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창밖의 물웅덩이에 고정된 채였다.

"파리에서. 3년 동안 준비했는데, 런웨이가 끝나고 박수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예의상 치는 박수조차도."

이윤은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뜨거운 차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는 위로의 말을 찾지 않았다. '괜찮아요', '다음에 잘하면 되죠' 같은 말은 그녀에게 모욕이 될 것임을 알았다. 직업적으로도 그는 알았다. 빈 칭찬이 얼마나 잔인한지. 히트 치지 못한 캠페인에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하는 상사의 미소가 얼마나 더 깊은 구덩이를 파는지.

그는 그저 침묵으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도망친 거예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내 실패를 모르는 곳으로."

그녀가 고개를 돌려 이윤을 보았다.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그것이 빗물인지 눈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신은요?"

그녀가 물었다.

"당신은 왜 고장 난 카메라를 들고 여기까지 왔어요?"

이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카메라를 내려다보았다.

검은색 바디 곳곳이 닳아 황동색 속살이 드러난 낡은 기계.

그는 손가락으로 렌즈의 테두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 너무 많이 찍어서요."

그가 입을 열었다.

"의미 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찍어서, 정작 담아야 할 것을 못 담게 됐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게 무서워졌어요. 내가 찍은 사진이 쓰레기가 될까 봐."

그는 마케터로서 수천 장의 이미지를 만들고 소비했다. 사람들을 현혹하기 위한 사진, 팔기 위한 사진 화보 촬영 현장에서 모델에게 "좀 더 자연스럽게 웃어주세요"라고 말하며, 정작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까맣게 잊어버린 자신을 발견한 날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셔터를 고장 냈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고장 난 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클레르가 피식,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편안해 보였다.

"우린 둘 다 고장 난 물건들이네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노란색 라이터를 꺼냈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카페 주인이 다가와 재떨이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엄지가 부싯돌을 밀어 올렸다.

치익.

이번엔 달랐다.

작은 불꽃이 일었다.

노란색 불꽃이 흔들리며 담배 끝에 붉은 점을 찍었다.

그녀가 깊게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허공으로 뱉어냈다. 하얀 연기가 실링팬의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그녀는 라이터를 끄지 않았다. 잠시 불꽃을 응시하다가, 이윤 쪽으로 라이터를 밀어놓았다.

"이제 켜지네요."

그녀가 말했다.

"비가 그쳐서 그런가 봐요."

이윤은 테이블 위에 놓인 라이터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노란색 플라스틱 안에 찰랑거리는 가스. 그리고 방금 피어올랐던 불꽃의 잔상.

"저기요."

이윤이 그녀를 불렀다.

그녀가 담배를 든 손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내일은 비가 안 온답니다."

그녀가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래서요?"

"지우펀(九份)에 갈 겁니다. 해가 지면 홍등이 켜지는 곳이죠."

이윤은 잠시 말을 골랐다.

심장이 둔탁하게 뛰었다. 이것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용기였다.

"거긴, 사진이 예쁘게 나옵니다. 기록되지 않더라도."

클레르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녀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우산 속에서 보여주었던 유혹적인 미소가 아니라, 처마 밑에서 보았던 그 쓸쓸함이 걷힌 맑은 미소였다.

"좋아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조건?"

"내일은 당신이 모델이 되어줘요. 내 눈에 담을 수 있게."

그녀는 대답도 듣지 않고 먼저 카페 문을 열고 나갔다.

딸랑.

문의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이윤은 남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식어버린 차는 쌉싸름했지만, 끝맛은 달았다.

그는 테이블 위에 남겨진 노란색 라이터를 챙겨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에서 손끝에 닿는 플라스틱의 감촉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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