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다섯 걸음, 닿지 못한 노크

by 마르코 루시

방으로 돌아온 이윤은 불을 켜지 않았다.

어둠만이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처럼 느껴졌다. 그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지만, 눈은 천장의 화재 감지기 불빛을 쫓고 있었다.

붉은 점이 깜박, 깜박.

새벽 2시.

잠들기를 포기했다. 이윤은 몸을 일으켜 여행 가방을 펼쳤다.

짐을 싸는 행위는 잔인했다. 그것은 이곳에서의 시간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가장 물리적인 의식이었다.

옷가지들을 개어 넣고, 세면도구를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낡은 니콘 FM2를 집어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그는 렌즈 캡을 닫았다.

'딸깍.'

그 소리가 관 뚜껑을 닫는 소리처럼 방 안에 울렸다. 그는 카메라를 옷가지 사이 깊숙한 곳에 파묻었다. 다시는 꺼내지 않을 것처럼.

가방 지퍼를 닫아 벽에 세워두자, 방 안은 완벽한 타인의 공간처럼 낯설어졌다.

이윤은 창가로 다가갔다.

유리창 너머로 타이페이의 밤거리가 내려다보였다. 비가 그친 거리는 건조하고 황량했다.

그는 주머니를 더듬어 노란색 라이터를 꺼냈다.

손안에서 굴렸다. 달그락, 달그락.

이 라이터는 누구의 것일까. 처음엔 그의 것이었고, 그녀에게 건네졌다가,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이제는 이 라이터만이 두 사람을 연결하는 유일한 끈이었다.

이윤은 충동적으로 방을 나섰다.

복도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카펫이 깔린 바닥은 발소리를 먹어치웠다.

그는 609호 앞으로 걸어갔다.

다섯 걸음.

단 다섯 걸음이면 닿을 거리였다.

그는 문 앞에 섰다.

문틈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도 잠들지 못한 것이다.

귀를 기울였다.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찾는 소리 같기도 했고, 짐을 싸는 소리 같기도 했다. 혹은, 흐느끼는 소리일지도 몰랐다.

이윤은 손을 들어 올렸다.

주먹을 쥐었다. 한 번만 두드리면 된다.

노크를 하고, 문이 열리면, 그녀를 안고 말하면 된다. 가지 말라고, 아니면 내가 가지 않겠다고. 파리로든 서울이든, 어디든 함께 가자고.

그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허공에서 멈췄다.

그는 마케터였다. 확률 없는 게임에 배팅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된 어른. 지금 문을 두드려 그녀가 나온다면, 그래서 서로의 체온을 확인한다면, 내일 떠날 수 없을 것이다.

이윤은 떨리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는 문고리 대신 차가운 벽에 이마를 잠시 대었다가 떼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안에서 인기척이 들린 것 같았다. 슬리퍼가 카펫을 스치는 소리. 문 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아니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던 환청일 뿐인.

이윤은 도망치듯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612호의 문을 닫고 등을 기댄 채, 그는 한참을 서 있었다.

복도 너머로 609호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지는 않을까 귀를 세웠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에어컨의 웅웅거림만이 어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오전 10시 30분.

이윤은 체크아웃을 했다.

리셉션 직원은 상투적인 미소로 "즐거운 여행 되셨나요?"라고 물었고, 이윤은 대답 대신 카드키를 건넸다.

캐리어 바퀴가 대리석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는 로비 소파에 앉았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부르기엔 아직 30분의 여유가 있었다.

어제 말했다. '로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들었을 것이다.

10시 40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이윤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중국인 가족, 비즈니스맨, 청소 직원.

클레르는 없었다.

10시 50분.

입이 바짝 말랐다. 그는 생수병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나오지 않을 작정일까. 아니면 이미 떠난 걸까. 아니, 그녀의 비행기는 저녁 6시다. 아직 체크아웃을 할 시간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방 안에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윤이 포기하고 떠나기를.

10시 55분.

이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6층으로 다시 올라가 볼까. 가서 문을 두드려 볼까.

하지만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라는 것을. 어제 선글라스 뒤에 숨겼던 그 눈물이 대답이었다.

11시 정각.

예약한 택시 기사가 로비로 들어와 이윤의 이름을 적은 피켓을 들었다.

"Mr. Lee?"

이윤은 피켓을 보고,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보았다.

숫자는 6층에 머물러 있었다.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Yes."

이윤이 대답했다. 목소리가 텅 비어 있었다.

기사가 그의 캐리어를 받아 들었다.

이윤은 마지막으로 로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던 자리.

비는 오지 않았다. 로비는 밝고 건조했다. 그날의 습기와 빗소리는 환영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돌아섰다.

회전문이 돌아가며 그를 밖으로 밀어냈다.

뜨거운 타이페이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택시 뒷좌석에 앉아, 이윤은 멀어지는 호텔을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꽉 쥐었다.

손바닥에 라이터 모서리가 박혀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차가운 플라스틱의 감촉만이, 그가 겪은 7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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