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위안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택시 기사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흥얼거렸지만, 이윤의 귀에는 그 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차창 밖으로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타이페이는 마지막까지 그에게 맑은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작정인 듯했다.
이윤은 멍하니 창밖을 보며, 주머니 속의 라이터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렸다.
이것이 그가 이 도시에서 가져가는 유일한 기념품이었다. 면세점 쇼핑백도, 펑리수 박스도 없이, 낡은 필름 카메라 하나와 남의 라이터 하나만을 든 채 그는 떠나고 있었다.
공항은 거대하고 차가웠다.
높은 천장, 반짝이는 대리석 바닥, 기계적인 안내 방송. 도시의 눅눅한 습기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이윤은 그 건조함이 낯설어 마른기침을 했다.
체크인 카운터 앞은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는 여권을 꺼내 들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서울/인천'이라고 적힌 전광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파리/샤를 드 골'행 항공편 정보도 떠 있었다.
오후 6시 10분 출발. 에어프랑스 AF557.
그녀가 탈 비행기였다.
이윤은 잠시 그 글자들을 응시했다.
지금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직 호텔 방에 있을까, 아니면 로비에 앉아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까.
부질없는 상상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오후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탑승까지 40분이 남았다.
그는 창가 쪽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통유리 너머로 거대한 활주로가 펼쳐져 있었다.
회색 콘크리트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여권을 다시 확인하려던 참이었다.
손끝에 종이의 질감이 걸렸다.
탑승권은 아니었다. 손가락에 닿는 감촉이 묘하게 빳빳했다.
그는 그것을 꺼냈다.
접혀 있는 작은 종이 호텔 방에 비치되어 있던 엽서의 한 귀퉁이를 찢은 것이었다.
이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제 넣은 거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니면 어제 지우펀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 그 어둠 속에서 손을 잡았을 때?
기억을 더듬어봐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술사처럼, 그가 모르는 사이에 흔적을 심어두었다.
이윤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펼쳤다.
삐뚤빼뚤하지만 힘이 들어간 글씨.
[ À bientôt.]
프랑스어였다.
그는 휴대폰을 꺼내 번역기를 켜려다가 멈췄다.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것은 'Adieu(영원한 안녕)'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국가 번호 +33으로 시작하는 프랑스 휴대폰 번호.
그리고 짧은 문장 하나가 더 있었다.
[ Paris is always rainy. ]
이윤은 멍하니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파리는 자주 비가 온다.
그 말은, 파리에도 그가 필요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비를 피할 처마가 아니라, 함께 비를 맞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녀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자신을 고치고, 다시 셔터를 누를 용기를 가지고 찾아올 때까지.
"대한항공 KE186편, 서울 인천행 탑승을 시작합니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윤은 종이를 아주 조심스럽게 접어, 여권 사이에 끼워 넣었다. 가장 안전한 곳에.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리창 밖으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타이페이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비가 슬프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푸석하고 지쳐 보이던 1화의 얼굴은 없었다. 대신, 무언가를 결심한 남자의 단단한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탑승구로 걸어갔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기내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이윤은 휴대폰을 꺼냈다.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기 전, 그는 주소록에 새 연락처를 추가했다.
이름은 적지 않았다.
대신 '비(Rain)'라고 적었다.
그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비가 그치면 라이터는 켜질 것이다.
비행기가 엔진 소리를 높이며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뒤로 젖혀지는 압력 속에서, 이윤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붉은 홍등과 초록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비로소 웃었다.
아주 열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기체가 땅을 박차고 올랐다.
그는 구름 위로 날아올랐지만, 그의 마음 한 조각은 여전히 저 아래, 빗속의 타이페이에 남아 6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